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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 15. 00:56 - 가루비0404

[희철/이특] 센티넬 팀 SJ




, 어디 가는데 또. ”

 

너희가 지난주에 임무 수행하다 부수고 온 건물 때문에 깨지러 간다. ”

 

. 다녀오십쇼, 팀장님. ”

 

 

 

 

팀장의 말이 곧 하늘이기로 유명한 SJ팀에서도 유난히 팀장인 정수를 졸졸 따르는 동해가 거실 소파에 누워 있는 제 옆을 지나가던 정수의 셔츠 끝단을 붙잡고 묻다가 헙,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평소답지 않게 90도로 허리를 꾸벅 숙였다. 정수가 피식 웃으며 그러니까 작작 좀 부수고 다녀하고 동해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더니 숙소를 나섰다.

 

엄청나게 큰 사건이었으면 말을 안 하는데, 그 날 동해와 시원에게 지시된 일은 그저 불법 가이딩약 수거였다. 대량으로 제조하고 있긴 했지만 입수한 그 약의 가이딩 수치가 미미해, 위험 조직에서 개입한 문제는 아닐 거라는 판단으로 주어진 소소한 임무였달까. 정수 역시 미리 자료를 건네받아 살펴보았고 마찬가지의 결론을 내렸기에 그냥 둘이 가서 재밌게 태우고, 불끄고 와라 하고 보낸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이야.

 

국내 센티넬 팀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강한 팀 중 하나인 SJ인지라 사실 이번 일이 뭐 팀 존폐에 영향을 끼친다거나 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분명 또 이래서 어린애들끼리 뭉쳐 놓는 건 위험하단 말입니다, 하며 고깝게 보는 몇몇 간부들의 궁시렁거림을 감내해야 할 것이었다. 영 귀찮긴 해도, 예뻐 죽겠는 내 새끼들이 그랬으니 내가 책임져야지, 생각하며 정수는 걸음을 옮겼다.

 

 

 

 

*

 

 

 

 

- 이동해 : 21/ 센티넬 / SJ팀 소속 / 능력 : / 등급 : SS

- 최시원 : 21/ 센티넬 / SJ팀 소속 / 능력 : / 등급 : SS

 

 

 

 

*

 

 

 

 

얼마나 혼내고 싶으셨으면, 그거 하나 부쉈다고 국방부에서까지 나왔대? 한가하시네. ”

 

애들이 잘못하긴 했지, . 조용히 처리하고 오라고 했더니 신났나봐. 가니까 창고 안에 약이 가득가득 차 있는 게 예뻤다나 뭐라나. ”

 

둘이 그렇게 이야기해? 귀엽게. 하여간 시원이는 평소엔 괜찮다가 동해만 만나면 그렇게 어려지는 것 같아. ”

 

 

 

 

정수가 현우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갤 끄덕거렸다.

 

아까 센터 간부 회의실로 가는 길에 현우를 만났다. 정수와는 같은 정신계열이다 보니 연수원 시절 때부터 함께 파트너를 이뤘던 적이 많아 센터에 와서도 줄곧 친하게 지내는 동갑내기 친구인데, 현장에서 발휘하는 능력보다 작전 설계 쪽으로 더 재능이 있어 임무 수행 전 각 팀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현우가 회의실로 가는 정수를 붙들고, 다 까이고 나면 제 방으로 오라는 이야길 했었다. 그래서 센터 본관 3층에 있는 현우의 사무실로 향하니 눈치 빠른 현우는 대략 이 쯤이면 오겠다, 예상을 했었는지 정수의 취향인 휘핑 듬뿍 아이스 초코까지 미리 준비를 해 두었더라.

 

 

 

 

내가 왜 불렀냐면, ”

 

 

 

 

정수가 빨대로 크림을 콕콕 찍어 먹다, 본론을 꺼내는 현우의 목소리에 느릿하게 고갤 들었다. 그리곤 현우가 이야기를 시작하며 제 책상에서 꺼내오는 종이 한 장으로 시선을 돌린다.

 

 

 

 

연수원에 지금, 겁나 골 때리는 센티넬이 하나 들어와 있어. ”

 

. ”

 

우리랑 동갑, 24. ”

 

 

 

 

24? 기록에 의하면 대부분이 20살이 되기 전에 발현이 되는 편이다. ... 좀 늦긴 한데, 스무살 넘어서 발현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다행인 건, 폭주 초기 때 발견 돼서 큰 문제는 없고 애도 건강한데, 문제는 연수원에 들어 온 이후로는 가이딩을 안 받겠다고 버텨. ”

 

죽으려고 안달났대? ”

 

그러니까. 자기는 한 곳에 귀속되는 게 죽어도 싫다나, 뭐라나. 자꾸 그러면 죽는다니까 여기 잡히는 것도 죽는 거나 다름없다나. 아무리 능력을 강하게 안 써서 축적되어 있는 가이딩 수치가 높다고는 하지만, 슬슬 바닥날 때가 됐거든. 자기 몸이라 자기가 더 잘 알 텐데도 여전히 저러는 거 보면 진짜 독한 새끼야. ”

 

그렇게까지 싫어하는데 죽게 두지, . ”

 

왜겠어? ”

 

 

 

 

정수에게 들고 있던 종이를 내미는 현우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저렇게 얼굴에 바람이 들어 올록볼록해지게 웃고 있는 걸 보면 아마 꽤 흥미로운 일이겠구나 싶어 정수가 종이를 받자마자 등급과 능력 계열 등의 주요 정보가 적힌 곳을 들여다보았다.

 

? 이래서?

정수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스물스물 돌았다. 그걸 본 현우가 그럴 줄 알았다며 웃음을 터트리고는 소파 깊숙이 몸을 묻었다.

 

 

 

 

걔 절대적으로 살려야 한다고 상부에서 지금 센터 닥터들까지 걔한테 보내놨어. 걔 말이라면 다 따라주라는 지시까지 내려왔다. ”

 

가이딩도 안 받는다고? ”

 

관심 있어? ”

 

관심? ”

 

 

 

 

정수가 현우에게서 받은 종이를 삼등분으로 접어, 입고 있던 자켓 안주머니에 깊숙하게 꽂아 넣었다. 그리곤 가봐야 겠다며 마시다 남은 아이스초코를 쪼옥 빨대로 빨아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려. 내가 조만간 데리고 와서 인사시켜 줄게. ”

 

 

 

 

*

 

 

 

 

- 김희철 : 24/ 센티넬 / 미소속 / 능력 : / 등급 : SS

 

 

 

 

*

 

 

 

 

정수가 연수원에 등장하자 연수원이 떠들썩해졌다. 졸업한지 아직 몇 년 되진 않았지만, 연수원 레전드 중 감히 원탑이 아니던가, 박정수는.

 

연수원에서 매년 이뤄지는 기술평가에서 여럿 있는 SS급들을 제치고, 1위를 당당히 거머쥐었던 인물로... , 그게 끝이 아니다. 정수가 정말 진짜 레전드가 된 이유는 그 때 1위를 해서 받았던 소원 티켓을 맹랑하게도 제가 직접 센티넬 팀을 꾸리고 싶어요라며 망설이지도 않고, 받자마자 바로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사실 매년 기술평가에서 한 명씩 나오는 그 1위들이 그 소원티켓을 고작 가족들을 보고 싶어요라던가, ‘외출하고 싶어요정도에 썼던 것에 비하면 고작 연수생인 정수의 소원은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것이었더랬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정수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당시 갓 부임한 센티넬 센터 국장은 그 소원을 듣고 한참을 웃더니 정수와 관련 된 모든 자료들을 자신의 방으로 가지고 오게 했었다. 그리곤 한 시간 정도, 정수와 상담을 했던가? 그 다음 날, 정수는 무사히 졸업 때까지 최우수 성적을 유지하면 그 소원을 이루어주겠다는 확답을 받았다.

 

결국 졸업과 동시에 정수는 그 어느 센티넬 팀에도 속하지 않은 채 자신이 팀장이 되어, 자신들의 팀원들을 직접 스카웃하고 꾸려 나갔다. 그 덕에 정수의 팀 SJ는 센터 내에서도 명실상부 최우수팀으로 거듭나고 있었으며, 포스트 박정수를 꿈꾸거나, 아니면 열심히 노력해 정수의 눈에 들어보고자 하는 센티넬 연수생들이 늘어 전체적인 전력 향상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정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연수원 훈련장으로 향했다. 희철이 정상적인 일과를 따르고 있다면 아마 지금 시간은 한참 훈련을 받고 있을 시간이었다. 허나, 열 개가 넘는 훈련장을 모두 둘러봐도 희철은 없었다. 이걸 어디서 알아봐야 하지. 사실 연수원 측에 이야기하면 바로 방송을 통해 희철을 불러줄 테지만, 그렇게까지 하면 센터 쪽에 즉결 보고가 들어갈 테고 일이 조금 복잡해질 터였다. 결국 정수는 산책 삼아 조금 걷기로 했다. 연수원이라고 해봤자 센터의 반의 반도 안 되는 크기인데 오늘 안에는 찾겠지, 싶어서.

 

마음을 비우고 조금 걷다 보니 연수원 시절의 제 모습이 생각났다. 이왕 이 안에 들어온 거, 최고라도 되어 보자는 마음으로 정말 죽어라 훈련했었는데. 그 과거가 지금의 정수를 만들었고, 지금의 아이들을 제 곁에 모아 주었으니 바쁘던 그 시절을 정수는 후회하지 않았다.

 

 

 

 

, 찾았다. ”

 

 

 

 

지금 시간이 몇 시더라. 슬쩍 손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보니 아직 오전 11. 아침을 먹기엔 늦었고, 점심을 먹기엔 이른 시간. 그런데 정수가 희철을 발견한 곳은 식당이었다. 물론 지금 식당엔 희철을 제외하고도 몇몇 연수생들이 있기는 했지만, 단 한 번도 정해진 매뉴얼을 어겨 본 일이 없던 정수는 이 시간에 식당에 있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뭐지, 독특하네.

 

 

정수가 거침없이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 왼쪽 가슴에서 빛나는 센티넬 센터 뱃지에 연수원 아이들이 눈을 반짝거리며 정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정수의 얼굴을 아는 몇몇 아이들이 제 옆에 있는 아이들에게 저 사람이 그 유명한 SJ 박정수라며 정보를 공유했다.

 

정수는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혼자 밥을 먹고 있는 희철의 앞 의자를 뱅 돌려 거꾸로 앉아 의자 등에 팔을 얹고 제 턱을 괸 채로 희철을 바라보았다.

 

 

 

 

김희철씨, 우리 팀 할래요? ”

 

 

 

 

들려오는 제 이름에 묵묵히 밥을 먹던 희철이 고갤 돌려 정수를 바라보았다. 그다지 놀란 것 같진 않았다. 그냥 뭐지, 이건 또 하는 눈빛이었다.

 

 

 

 

나 알아? ”

 

알죠. ”

 

 

 

 

정수는 제 자켓 안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이력서를 펼쳐 희철의 앞에 들어 보였다. 그러자 희철이 먹던 숟가락을 식판 위에 땡그랑 소리가 나게 던져 놓았다.

 

어후, 연수원에서는 애를 대체 얼마나 오냐오냐한거야. 성격이 개차반이네.

 

철끼리 부딪히는 그 파열음이 싫어 인상을 조금 찌푸리긴 했지만, 희철의 까칠한 성격 탓에 놀라진 않았다. 이미 다 알고 오지 않았던가. 게다가 정수는 고작 이런 일에 놀라 눈을 부릅뜰 정도로 담이 약하지 않았다.

 

 

 

 

안 한다고 했어. ”

 

어차피 해야 할 텐데? ”

 

원래 있던 곳으로 데려다 놓을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

 

김희철씨. 뻐기는 건 좋은데, 힘은 빼지 맙시다. 본인이 위험해요, 이건. ”

 

위험하던 말든 상관없으니까, 제발 좀 놔 줘. ! ”

 

 

 

 

생각보다 더 완강한 희철의 반응에 정수가 고갤 갸웃했다. 아직 정수는 고작 얼굴을 비춘 것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예민한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더 있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에 정수는 지금 당장은 희철에게 매달려봤자 소용이 없겠다 판단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까 저 자식 왜 반말해?

 

 

 

 

*

 

 

 

 

, 박팀장님. 오셨어요? ”

 

김닥터, 오랜만이에요. 어쩐지 요즘 센터에서 안 보인다 했더니 여기 와 있었네요. ”

 

, 잠시 파견 나왔어요. ”

 

 

 

 

려욱이 앉으시라며 의무실 안 소파로 정수를 안내했다. 정수가 감사합니다, 하고 고갤 꾸벅 숙이고는 의무실 한 쪽에 있던 정수기 앞으로 가 종이컵에 녹차 티백을 하나 넣었다. 워낙 센터에서도 스스로 자잘한 일들을 많이 하던 정수인지라 려욱은 나름 손님인 정수를 대접할 생각도 없이 그저 슬쩍 보고 말았다.

 

 

 

 

안 그래도 도움이 좀 필요했는데, 김닥터가 여기 있다는 이야길 듣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

 

저도 박팀장님, 연수원 오셨단 이야기 듣고 깜짝 놀랐어요. 어찌나 유명하신지 전 의무실에만 있었는데도 소식이 들리던데요? ”

 

그러게요. 이 놈의 인기... ”

 

 

 

 

정수의 농담에 려욱과 정수가 마주 보고 웃었다. 원래 센터 소속 닥터인 려욱이었던지라 센터 병동에서 자주 마주치곤 했었는데, 여기서 보니 또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어쩐지 든든한 제 편을 얻은 기분이었달까. 심지어 센터 소속 닥터가 갑자기 이 곳에 파견 나와 있는 이유는 이미 현우에게 듣지 않았던가. 답은 김희철, 오로지 김희철이었다. 희철에 대해 알아 볼 수 있는 빠른 방법을 찾은 셈이었다.

 

 

 

 

, 제가 아직 이번 달 수치 검사를 안 받았는데. 김닥터한테 받고 가도 되죠? ”

 

, 그렇게 하세요. 검사 차트는 제가 센터 쪽으로 전달할게요. ”

 

 

 

 

정수가 소매를 걷고 려욱의 앞으로 제 팔뚝을 내밀었다. 그러자 려욱이 하얀 정수의 팔에 바늘을 꽂아 넣었다.

 

 

 

 

어쩐 일로 연수원엘 오셨어요? ”

 

눈 여겨 보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요. ”

 

그렇구나. ”

 

 

 

 

더 묻지 않아도 그 상대가 누군지 너무나도 자명했기에 려욱은 그저 웃고 말았다. 그런 려욱이 맘에 들어 정수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 때였다. 쿠당탕탕, 요란스러운 소리가 나며 벌컥 문이 열렸다. 대체 누가 이런 소리를 내면서 다녀? 가끔 제 등급만 믿고 의료진이고 뭐고, 연수원 내 사람들을 무시하는 투로 구는 연수생들이 가끔 있었기에 정수는 어떤 건방진 놈인지 얼굴이나 보자 싶어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력~ 나 한 시간만! ”

 

, 그러세요. ”

 

“ ...? ”

 

 

 

 

김희철이다. 정수가 예상하던 그 건방진 놈은 방금까지만 해도 정수에게 자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날을 세우고 까칠하게 굴던 희철이었다. 이게 웬 떡이지. 호랑이에 대해 알아보려고 왔는데, 호랑이가 스스로 굴러 들어왔다.

 

정수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희철과 려욱을 번갈아보았다. 뭐라고 불렀지? 김력? 김닥터 이름이 김려욱이니까, 아마 제 멋대로 애칭마냥 이름을 줄여 부른 걸테다. 김닥터가 8살 때 연수원에 들어왔으니까 둘이 뭐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일리도 없고... 편한 호칭, 편한 말투로 유추해 보자면 아무래도 희철은 이 연수원에서 그나마 려욱에게 마음을 좀 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냥 정보만 좀 얻어 가려고 했더니, 대어를 낚았네?

 

희철은 익숙하게 의무실 안 쪽 침대로 걸어 들어가 커튼을 치고 누웠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들리는 도로롱 소리를 보아 금세 잠이 든 듯 싶었다.

 

 

 

 

김희철씨 훈련 없어요? ”

 

있긴 있는데, 적응기간이랄까요. ”

 

, 연수원 어르신들... 되게 친절해지셨네. ”

 

“ SS급이잖아요. ”

 

 

 

 

그래, 그래서 나도 눈독 들이는 거고. 정수가 이해한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희철의 연수생 넘버는 SS-2016-01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2016년에 센터에 들어 온 SS급 연수생 중 첫 번째라는 거다. 지금이 슬슬 긴팔을 입기 시작하는 늦여름 ~ 초가을 언저리인데 불과 얼마 전에 들어 온 희철이 첫 번째이자 유일한 2016년의 SS급이라니. 이 정도면 SS급이 얼마나 귀한지 설명이 되겠지 싶다.

 

 

 

 

김닥터,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어요? ”

 

 

 

 

, 그럼요. 하며 려욱이 잠든 희철 쪽을 힐끗 바라보고 정수를 따라 잠시 의무실 바깥으로 나왔다. 열려 있는 복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서 가을 냄새가 어렴풋이 풍긴다. 괜히 서늘한 것 같은 기분에 려욱이 입고 있던 닥터 가운을 잘 여몄다.

 

 

 

 

친한가 봐요? 김희철씨 친구 없다던데. ”

 

성격이 워낙 독특하셔서. ”

 

 

 

 

너무 돌직구 아닙니까, 팀장님. 려욱이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자주 오시고, 전 제 할 일 열심히 하고 그래요. 딱히 부딪힐 일도 없고, 또 희철이형 성격이 워낙 쿨하셔서. 그래서 좋아요. ”

 

... 그런 성격이구나. 눈치챘겠지만, 제가 김희철씨한테 관심이 좀 많아요. ”

 

 

 

 

어쩐지 고백 같아 들리는 건 제 착각인가요.... 려욱이 또 다시 웃었다. 재미있는 분들이야 정말, 하면서. 어쩐지 두 사람이 함께하면 재미있을 것 같지 싶었다.

 

 

 

 

김희철씨가 보통보다 훨씬 더 예민한 것 같단 생각이 들던데. 이유가 궁금해요. ”

 

 

 

 

정수의 물음에 려욱이 제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희철이 저에게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어 사실 정수에게 답변할 내용을 려욱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남의 비밀 비스무리한 이야기를 이렇게 맘대로 꺼내도 되나 싶어 조금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그런 려욱을 가만히 보던 정수는 어쩐지 좋은 사람을 하나 더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들은 정수의 등급과 지위에 눌려 벌벌 떨거나, 묻지 않은 것까지 속사포로 쏟아 내기 일쑤인데 려욱은 다른 사람의 소중한 것을 존중해 주는 법을 아는 사람인 것 같기 때문이었다. 김닥터, 이런 면도 있었구나.

 

 

 

 

말씀해주세요. 오늘 나눈 이야기는 평생 모르는 걸로 할게요. ”

 

, 그게... ”

 

김희철씨를 저희 팀으로 영입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꼭 필요한 내용이에요. 부탁드립니다. ”

 

 

 

 

려욱 역시 희철이 잘 되길 바랐다. 국내 센티넬에게, 그것도 저렇게 자유분방한 성격의 센티넬에게 SJ팀보다 더 좋은 대안이 있을까. 결국 려욱은 속으로 희철에게 백 번, 천 번 사죄를 하며 입을 열었다.

 

 

 

 

박팀장님은 희철이형이 어때 보이세요? ”

 

어때 보이냐구요? ”

 

, 성격이. ”

 

 

 

 

그닥 좋은 성격 같지는 않던데... 정수가 제 목 언저리를 손가락으로 긁으며 머쓱하게 웃었다.

 

 

 

 

까탈스럽고, 예민하고, 낯도 많이 가리고... ”

 

그래 보이죠? 근데 그렇게 대하기 힘든 사람은 아니에요. 희철이형 능력 발현한 곳이 1~2주에 한 번씩 봉사활동 다니던 보육원이래요. 알고 계시죠, 희철이형 능력. 주변에 아무도 케어해 줄 사람이 없으니 폭주 초기까지 갔겠죠. 다행히도 신고가 일찍 이루어졌고, 수습이 잘 돼서 아무도 다친 사람은 없는데... 보육원 정원에 있던 식물도 다 죽고, 키우던 토끼나 닭 이런 것들도 다 죽었대요. 그걸 자기 눈으로 봤으니 충격이 큰 모양이에요. ”

 

자기 능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군요, 김희철씨는. ”

 

. 저주받은 능력이라고 이야기하더라구요. ”

 

 

 

 

그제야 희철이 왜 그렇게 사람들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린 채로 혼자만 겉돌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그 이유라면 충분히 이해가 가긴 갔다. 정수 역시 희철의 이력서를 처음 보았을 때 그의 위험한 능력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가. 자신의 능력이 그저 물을 쏘거나, 불을 뿜는 정도라면 모를까... 이렇게 부정적인 이미지의 능력을 가진 센티넬들이 발현 시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독이라... 좀 까다로운 능력이긴 하지만 얼마든지 훈련을 통해 자기 제어가 가능할 테다. 쉽지 않더라도 정수가 그렇게 만들 생각이었다.

 

 

 

 

김희철씨는 김닥터 능력이 뭔지 알아요? ”

 

, 알아요. 조금이라도 긴장 푸시라고 첫 날 말씀드렸어요. ”

 

 

 

 

, 그랬구나? 이제야 희철이 려욱에게 빨리 마음을 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비록 B급 가이드지만 려욱의 능력은 치유. 려욱이 닥터가 되었다는 이야길 들었을 때 제 능력에 너무나 걸 맞는 직업을 가지고 되었구나 생각했었는데 아마도 김희철은 제 무서운 능력에서 려욱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으리라 믿은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김희철의 곁에 좋은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김희철씨 잘 부탁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우리 같이 센터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

 

, 저도 그러길 빌어요. ”

 

 

 

 

*

 

 

 

 

희철과 희철의 주변 상황 파악을 어느 정도 마친 정수가 다시 센터로 복귀했고, 정수가 어디에 갔는지 이미 소식을 들은 SJ 팀원들은 정수가 물어 올 소식이 궁금해 외출도 하지 않은 채 숙소에 붙어 있었다. 심지어 팀원들이 임무에 극도로 지쳐 급한 가이딩이 필요할 때 외에는 숙소에 오지도 않던 SJ팀의 임시 가이드 종운까지 숙소 소파에 늘어져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더라.

 

 

 

 

우리 팀원들께서 어쩐 일로 이렇게 얌전히 모여 계셨지? ”

 

 

 

 

왜인지 뻔히 알면서도 놀려주고 싶은 마음에 신발을 벗으며 이야기하니, 아까 거실에서 정수를 배웅했던 동해가 정수 쪽으로 몸을 완전히 돌려 눈을 반짝 빛내며 , 어때 어때?’ 하며 본론을 재촉해왔다.

 

 

 

 

... 좋아. ”

 

 

 

 

미처 풀어내지 못한 진실들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겁나 날 하대하고, 쓰레기처럼 대하지만... 좋아! 이런 이야기를 미리 해두면 분명 이 팀장바라기들에겐 희철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들이 생길 게 분명했다. 정수는 결국 많은 이야기들을 털어놓지 않은 채 나중에 다시 만나고 오면 자세히 이야기해줄게하며 제 방으로 올라갔다.

 

 

 

 

좋을 리가 없는데? ”

 

, 놀래라. 이건 뭐, 가이드인지 센티넬인지 구분이 안 가... ”

 

 

 

 

어느새 정수의 뒤를 따라 온 종운이 정수의 방문 앞에 삐딱하게 기대어 그런다. 아마 SJ팀보다는 센터와의 일을 더 많이 하는 종운은 따로 들은 내용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정수는 슬쩍 종운의 뒤를 쳐다보고는 종운에게 문을 닫고 들어오라는 신호를 했다. 입꼬리에 웃음을 걸고 있던 종운이 그럼 그렇지, 하며 정수의 방문을 닫는다.

 

 

 

 

제가 들은 게 있어서, 김희철이 그렇게 형을 곱게 대했을 리가 없단 걸 알거든요. ”

 

알아도 모른 척, 조용히 좀 해줘. 애들이 알았다간 그딴 새끼 안 받는다, 난리 난리를 칠 거야. ”

 

알지. 박팀장님 팬클럽 SJ. "

 

 

 

 

종운의 말에 아기새처럼 거실에서 짹짹거리던 팀원들이 떠올랐다. 귀여워 죽겠네, 정말. SS등급에, 작전만 나가면 무서운 얼굴로 날아다니는 녀석들이 정수의 앞에선 꼭 강아지처럼 순하고 깨발랄하니 귀엽다. 그래. 이 맛에 팀장하잖아, 내가.

 

 

 

 

만나고 온 소감이 어때? ”

 

... 괜찮았어. 우리한테 필요한 사람이야. ”

 

영입 예정? ”

 

영입 예정. ”

 

 

 

 

, 괜찮았나보네. 종운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돌았다. 이게 얼마 만에 들어오는 SJ팀 신입이던가. 다른 팀들은 들어왔다, 나가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해관계에 따라 팀원들이 트레이드되기도 하는데 SJ팀은 처음 정수가 팀을 꾸릴 때 영입했던 시원과 동해, 그리고 졸업을 기다리다시피하다 낚아 온 규현, 이 이후로는 거의 동결 수준이었다. 보통 가이드 포함 5인에서 6인 정도로 구성되는 게 일반적이건만, SJ팀은 전속 팀 가이드도 없으니 팀장인 정수를 포함해 4명이었던지라 센터에서도 종종 정수에게 인사 추천을 하곤 했었다. 물론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은 정수는 도리도리 고갤 저었지만.

 

그 두텁던 얼음 장벽이 조금은 녹아 가는 모양이었다. 희철까지 영입을 마치면 그래도 센티넬 5인조는 구성이 되니, 좀 더 안정적인 작전 수행이 가능할 터였다.

 

그럼 이제 좀 덜 다쳐 오겠지. 늘 규모가 큰 작전을 수행하고 오면 다른 팀들에 비해 몇 배로 체력을 소진하고 돌아오던(팀가이드가 없어 SJ팀은 작전 중에 가이딩을 받을 수 없었다.) SJ팀 팀원들을 떠올리며 종운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좀 의외긴 해. ”

 

뭐가? ”

 

그런 능력을 형이 고를 줄은 또 몰랐네. ”

 

 

 

 

SJ팀 팀원들의 능력을 보면 알겠지만, 정수는 대놓고 누가 봐도 위험하다 싶은 능력들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물론 이 능력은 어떻고, 저 능력은 어떻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정수의 작전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능력이었기에 애초에 배제시켰던 편이었다.

 

 

 

 

아직 능력 안정화도 안 됐던데, 가능성이 좀 보여? ”

 

 

 

 

종운의 물음에 정수는 희철의 두려움이 떠올랐다. 희철은 제 능력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일수록 이 능력을 올바르게 사용할 확률이 크다는 걸 정수는 알고 있었다.

 

 

 

 

, 김희철은 우리 팀에서 가장 위협적인 센티넬이 될 거야. ”

 

 

 

 

내가 그렇게 만들어 보려고.

 

 

 

 

*

 

 

 

 

SJ팀에는 별 다른 일이 없었다. 얼마 전 시원과 동해가 작전 내용과는 별개로 건물을 부숴 버리는 바람에 경고를 받은 참이었고, 정수는 이 틈을 타 며칠 간 작전을 배정받지 않았다. 그래서 정수는 오늘도 연수원으로 향했다.

 

연수원 관계자들은 벌써 며칠 연속 정수가 출근도장을 찍자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연수원에 있을 때야, 등급이고 뭐고 상관없이 그저 연수생 신분이라는 이름표 하에 대하면 그만이었는데 연수원을 졸업하고 정식으로 센터 소속 센티넬이 되어 강한 센티넬 팀을 이끌고 있는 S급 팀장이라면 말이 달랐다.

 

그나마 편하게 자기 혼자 차 끌고 훅, 돌아다녔기에 망정이지, 팀원들까지 다 끌고 왔어봐... 연수원 관계자들이 그나마 지금이 나은 거라고 망상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했다.

 

 

 

 

, 지금부터 눈을 감습니다. 제가 셋까지 세면 눈을 뜨세요. ”

 

 

 

 

이왕 연수원에 온 거, 뭐 하나는 하고 가야 정신 놓고 돌아다닌단 소리 안 듣지 않겠냐는 종운의 충고대로 정수는 오늘 센티넬 연수생들을 모아두고 특강을 빙자한 능력 자랑 쇼를 벌이고 있었다. 특별히 준비한 게 없어 그저 제 능력들을 몇 가지 보여줄 뿐인데, 그게 그렇게 대단해보였는지 와아, 하고 홀린 듯 박수를 짝짝 치는 어린 연수생들이 귀엽다.

 

 

 

 

하나. ”

 

 

 

 

그 중엔 김희철도 있었다. 얼마 전에 의무실에 갔을 때 훈련 땡땡이를 치고 돌아 다니길래 오늘도 못 보려나 했는데 아예 훈련에 들어오지 않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 ”

 

 

 

 

모두가 눈을 감은 사이에서 희철의 두 눈만 반짝거리며 빛이 났다. , 저 자식 정말 더럽게 말 안 듣는다. 어차피 눈을 감으라는 게 좀 더 극적인 효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매개체였을 뿐인지라 별 상관은 없어 정수는 희철에게 별 제지를 가하진 않았다.

 

 

 

 

. ”

 

 

 

 

,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반짝 반짝 눈들이 떠졌고 그들의 눈앞엔 사방이 막힌 훈련장이 아닌 넓게 펼쳐진 초원과 까만 밤하늘이 있었다. 밤하늘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떠 있었고, 주변엔 차지만 상쾌한 바람이 불었으며, 귓가엔 시골 산 속에서 들리는 뻐꾸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런 게 환각 능력이구나. 그저 눈앞에 헛 게 보이는 게 아니라 정말 그야말로 세상이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탁 트인, 후련한 기분에 괜히 벅차올라 하는 연수생들을 보며 정수가 웃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엔 환각 능력이 없나요? ”

 

.... 저요. ”

 

 

 

 

센티넬들 중간에 서 있던 아직 많이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 하나가 손을 들었다. 괜히 같은 능력이고 하니, 끌리네. 정수가 피식 웃으며 그 아이의 주변으로 꽃잎을 띄웠다. 그러자 그 주변에 있던 연수생들이 우와, 탄성을 지르며 잡히지 않는 꽃잎을 잡으려 허공에 손짓했다.

 

 

 

 

어때요? 아름답죠? ”

 

! ”

 

모든 능력은 스스로가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이렇게...! ”

 

 

 

 

정수의 말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 하늘에서 반짝거리던 별이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되어 연수생들의 주변으로 내리 꽂혔다. 방금까지만 해도 너무나 아름다웠던 풍경이 갑자기 위협적으로 다가오자 놀란 연수생들이 저들끼리 꽁꽁 뭉쳐 흠칫, 몸을 떨었다.

 

 

 

 

이렇게, 위험이 될 수도 있어요. ”

 

 

 

 

이 설명을 하며 정수는 단 한 번도 희철을 쳐다보지 않았다. 허나 희철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아마 희철은 지금 정수의 능력을 보며 자신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재고해보게 될 것이었다. 그러라고 했지, 내가. 내가 친절한 건 내 팀원들 한정이라.

 

 

 

 

자기 등급이 족쇄라고 생각합니까? 자기 능력이 쓸모없어 보여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발전 가능성이 없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세요. 여러분의 능력은 한정되어 있지 않아요. 능력 속에서 길을 찾으세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이룰 수 있을 겁니다. ”

 

 

 

 

들었지, 김희철?

 

 

 

 

*

 

 

 

 

- 박정수 : 24/ 센티넬 / SJ팀 소속 / 팀장 / 능력 : 환각 / 등급 : S

 

 

 

 

*

 

 

 

 

희철은 오늘도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처음엔 제 등급이 SS라는 사실에 연수원의 다른 연수생들도 여럿 말을 걸어오고, 친하게 굴어 왔었는데 워낙 예민하고, 까칠하게 굴어 오는 희철 탓에 이젠 다들 알아서 희철을 피하고 있었다.

 

혼자 이러고 있으려니 더럽게 맛없다, 밥도.

 

인상을 찌푸린 채 숟가락으로 밥을 쿡쿡 찌르다 이제 그만 일어나려는데 희철의 앞에 식판이 하나 놓였다. 뭐야, 싶어 고갤 드니 아까 모두의 중심에 서 있던 정수가 제 앞에 있었다.

 

정수가 제게 와서 할 이야기는 너무나도 뻔할 뻔자라, 희철은 그냥 무시하고 정수를 피하려 했다. 그러다 정수가 뭐 마려운 강아지 표정을 하며 희철의 식판을 붙들었다.

 

 

 

 

김희철씨, 저 김닥터 올 건데! 같이 밥 좀 먹어주면 안돼요? ”

 

 

 

 

김닥터라는 말에 힐긋 뒤 쪽을 바라보니 저 멀리 식판에 배식을 받고 있는 려욱이 보였다. 려욱과 정수를 번갈아 바라보던 희철은 결국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 희철을 보며 정수가 피식 웃었다. 그래, 천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야.

 

희철이 말없이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누구든 간에 그래도 같이 먹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또 밥이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정수와 희철이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식당 내의 사람들이 모두 이 쪽을 훔쳐보았다. 당대 최고 센티넬 팀 팀장과 올해 처음으로 들어 온 SS급 센티넬의 만남이 꽤 의미심장해 보이긴 했던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수는 제 앞에 앉은 희철의 얼굴을 열심히 뜯어 보았다.

 

이거, 이거... 능력만 센 줄 알았더니, 얼굴도 세네.

 

 

 

 

김희철씨, 눈 되게 크네요. ”

 

“ ... ”

 

, 이만~하다! 속눈썹도 막 이만~큼 길고. ”

 

 

 

 

정수의 말을 듣자 희철은 괜히 정수를 마주 볼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쟤는 대체 뭐길래 사람한테 이렇게 들이대지 못해서 안달이야. 여기서 눈 뜨고 쟤 보면, 괜히 내 눈 크다고 자랑하는 것 같잖아... 괜한 말을 해가지고.

 

희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리 없는 정수는 여전히 생글생글 방싯방싯 웃으며 희철을 살폈다.

 

 

 

 

대단하시네요, 두 분. 이 시선 속에서 밥이 넘어가요? ”

 

 

 

 

배식을 다 받은 려욱이 다가와 희철의 옆에 식판을 놓으며 그런다. 이 센터에서는 려욱과 함께하는 시간이 그나마 제일 많은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란히 앉아서 밥을 먹는 건 또 처음인지라 혹여 제가 피해를 주진 않을까 걱정이 된 희철이 슬쩍 옆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자 그런 희철을 알아챈 려욱이 형, 맛있게 드세요 하면서 일부러 희철의 팔을 톡톡 두드렸다.

 

옳지, 잘한다. 김닥터.

 

정수와 려욱은 꽤 오래 밥을 먹는 편이었다. 희철은 애초에 밥을 다 먹었지만, 그 두 사람 옆에 진득하게 앉아 있었다. 그나마 좀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봐도 이 사람들은 날 위험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가 않아. ‘다 먹은 거에요?’ 물어오며 희철의 식판에 남아 있는 소시지를 집어 가는 정수를 보면서 희철은 생각했다. 내가 저주받은 게 아닐 수도 있어.

 

능력 속에서 길을 찾으세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이룰 수 있을 겁니다.

 

아까 훈련장에서 했던 정수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

 

 

 

 

한동안 매일같이 오던 박정수가 걸음을 끊었다. 처음에는 편했는데, 그게 이틀이 되고 삼일이 되고 일주일이 되니 슬슬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졌다. 허나 박정수에 대해 알아볼 길이 없었다.

 

희철과 함께 지내는 저보다 어린 연수생들은 박정수와 저보다도 가깝지 않은 것 같아 보였고,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을(물론 거기에 박정수의 소식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을 접할 기회도 이 곳에선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새끼는 왜 알짱거리다가 갑자기 발을 뚝 끊어서 사람을 궁금하게 만들고 그래...

 

결국 요즘 조금 착실하게 훈련을 받는 편이던 희철은 또 한 번 훈련 땡땡이를 치고는 의무실로 향했다.

 

 

 

 

, . 오셨어요? ”

 

. 나 좀 잘게, 려욱아. ”

 

 

 

 

침대에 누웠는데 눈이 말똥말똥하다. 요즘 몸이 힘들어서인지 밤에 잠을 잘 자 그런지 몰라도 어쩐지 잠이 올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몇 번이고 몸을 뒤척이는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려욱이 목에 청진기를 건채로 체온계를 들고 희철의 침대로 다가왔다.

 

 

 

 

의무실에 오셨으니까 의례적인 검사는 해야 해요. 아시죠? ”

 

 

 

 

이미 의무실 단골이었던지라 그 정도는 알고 있었던 희철이 대답 대신 귀를 덮고 있던 머리를 귀에 꽂고는 체온을 재기 편하도록 고개를 저 쪽으로 돌렸다.

 

안 그래보여도 참 따뜻한 형이란 말이야. 려욱이 피싯 웃으며 희철의 귀에 체온계를 꽂았다.

 

 

 

 

... .. 박정수는 요즘 바쁜가봐? ”

 

박팀장님이요? 박팀장님이야 원래 연수원엔 오실 일이 없긴 하.... , 그 팀 요즘 난리라던데. 박팀장님 말고, 팀원이 세 명인데 그 중 두 명이 작전 수행하다가 폭주가 왔어요. 초기라 다행히 위기를 넘기긴 했는데 그 팀원들이 다 최상위 등급이라 아직 정상회복이 힘든가 보더라구요. 박팀장님이 또 팀원 아끼기로 유명해서... ”

 

그래? 그런 일이 있었어? ”

 

. 박팀장님 진짜 형 때문에 여기 매일 오신 거에요. 되게 바쁜 분이에요, 그 분. ”

 

 

 

 

려욱의 말에 희철이 그래...? 하며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간단한 검진을 마친 려욱이 됐다아, 하며 희철의 가슴께까지 얇은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리곤 쉬세요, 하고 커튼까지 쳐두고 나가는데 희철의 곱고 흰 손이 려욱의 가운을 덥석 잡아왔다. 놀란 려욱이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냐며 희철을 다시 돌아보았고 희철은 고갤 도리도리 저으며 음... , 그게... 하며 뜸을 들였다.

 

 

 

 

불편한 곳 있으시면 바로 말씀하셔야 해요. 안 그래도 형 지금 좀 위험한 상태라... ”

 

아니, 있잖아. 연수생들은 센터에 못 가? ”

 

센터에 가고 싶으세요? ”

 

 

 

 

려욱의 되물음에 희철은 아니! 꼭 그런 건 아닌데! 하며 뉘였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려욱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이렇게나 귀엽고 자기 맘 못 숨기는 솔직한 형인데, 센터는 왜 이 형을 무서워 못해서 안달이래. 어차피 센터에서도 가능하면 희철이 원하는대로 맞춰주라고 했으니 뭐, 어차피 센터에 가게 될 희철을 견학 식으로 센터에 보내주는 게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여보세요. 연수원 파견 닥터 김려욱입니다. . 센터 방문 신청을 좀 하려구요. 아니요. 제가 아니라 연수생입니다. , 조회 부탁드립니다. 연수생 넘버 SS-2016-01. 김희철입니다.

 

 

 

 

*

 

 

 

 

희철이 센터에 방문하겠다는 이야기는 려욱의 센터 방문 신청이 접수되기가 무섭게 바로 현실이 되었다. 희철 조차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잊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던 지라 제가 괜한 말을 한 건 아닌지 조금 후회도 됐다. 그 동안은 늘 박정수가 자신을 보러 왔었다. 주변에서는 정말 대단한 거라며, 역시 최상위 등급은 다르다는 이야길 했지만 사실 이 작은 연수원 안에서 마주했던 박정수가 그렇게 대단하다는 건 단 1%도 실감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센터에 방문함과 동시에 희철은 정수의 위치를 피부로 느꼈다. 마치 이들을 감싸기라도 한 듯 울창한 숲 안에 있는 센터로 들어가기까지 몇 번의 검문소를 거쳤고, 마침내 도착한 센터 앞에선 어떻게 희철의 방문 소식을 들었는지 정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수의 뒤로 길게 늘어서 있는 사람들은 정수가 먼저 움직이지 않자 아무도 움직이지 않은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는데, 그 가장 선봉에 정수가 서 있는 걸 보니 정수의 위치가 보였다. , 얘 센터 존나쎄구나.

 

평소 희철을 방문할 때 입고 있던 평상복과는 달리 정수는 어깨부터 가슴팍까지 훈장 비스무리한 것들이 다닥다닥 달린 남색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낯설어 희철은 차에서 내리고도 한참 동안을 어색하게 주변만 살폈다.

 

그러다 정수의 바로 뒤에 서 있는 남자 하나가 정수에게 뭐라 귓속말로 이야기하자 정수가 웃으며 희철의 앞으로 나섰다.

 

 

 

 

어서오세요, 김희철씨. 센티넬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합니다. ”

 

오버하지 마, 그냥 보러 온 거야. ”

 

, 들어가죠. ”

 

 

 

 

차마 '네가 연락이 없어서 궁금했어'라는 말은 하지 못했는데 정수는 그걸 알아들었는지 아닌지 그저 웃으며 희철의 팔을 잡아끌었다. 정수는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사람들에겐 아직 컨디션이 좋아 보이니 괜찮다며 자리로 돌아가라 이야기했다. 아마 가이딩을 받지 않고 있는 중인 희철의 상태를 염려하여 모인 센터 가이드, 의료진, 보안팀인 것 같았다. 더불어 희철의 상태를 확인하고자 하는 몇몇 중임들도 있었을 테고.

 

정수는 아까 제 뒤에 서 있던 그 남자만을 저와 희철의 뒤로 대동시켰다. 뭐지 싶어 자꾸 쳐다보니 그제야 정수는 웃는 얼굴로 규현아, 인사해 하며 남자를 희철의 앞에 세웠다. 규현을 부르는 정수의 목소리가 꽤 다정하다. 그제야 희철은 아마도 규현이 정수의 팀원일 것이라 예상했다.

 

 

 

 

안녕하세요, 조규현이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

 

 

 

 

말씀 많이 들었다고? 규현의 말에 희철이 슬쩍 정수를 쳐다보니 정수가 어깰 으쓱하며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희철입니다. ”

 

 

 

 

제 앞으로 뻗은 규현의 손을 살풋 잡으니 정수가 두 사람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 ... 분명 정수는 지금 '내 새끼들끼리 친하게 지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 나 아직 센티넬 한단 말 안 했다니까. 일반인으로서의 삶이 길었던 희철은 자신이 센티넬이 되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는 알았으나 아직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물론, 요즘은 가끔 그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긴 했지만.

 

 

 

 

규현이도 김희철씨랑랑 같은 등급. 규현이 말고도 우리 팀원이 두 명 더 있긴 한데, 나중에 소개시켜 줄게요. ”

 

 

 

 

규현은 종운에게 가 봐야 할 시간이라며 넉살좋게도 희철에게 '조만간 다시 뵐게요, ' 하고 인사를 건네더니 사라졌고 정수는 희철에게 뭘 보여주고 싶은 건지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박정수. ”

 

저요? ”

 

난 이 센터가 별로 안 궁금해. ”

 

“ ? ”

 

너 보러 온 거야. 네가 갑자기 소식이 없어서. ”

 

 

 

 

그 말에 가만히 희철을 쳐다보던 정수가 피식 웃었다. 이들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복도 중간에서 가만히 서 있는 두 사람을 힐끔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수는 희철을 계속해서 빤히 바라보았고, 사방에서 날아오는 시선들이 부끄러워진 희철은 제 큰 손으로 눈을 가리더니 옆으로 고갤 돌렸다.

 

 

 

 

신경 쓸 줄 몰랐어요. 그럴 줄 알았으면 김닥터 통해서 연락이라도 해 줄걸. ”

 

..괜찮아. 내가 뭐 너한테 그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는 그런 것도 아니고... ”

 

따라와요. ”

 

 

 

 

정수는 저와 희철이 걸어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갔다. 희철에게 그 말을 듣고 나서 뭘 보여주려는 걸까, 궁금했던 희철은 이내 온갖 패드를 몸에 붙인 채 죽은 듯이 침대에 누워 있는 남자를 창문너머 보게 되었다. 두 사람은 각각 1인 병실에 누워 있었는데 바로 옆 병실에 있어 번갈아가며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박정수는 아마 이 투명한 창을 통해 매일 두 사람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팀장님, 팀장님 하고 부르는 멋진 사람이지만 막상 제 팀원들이 저렇게 누워있는 것을 보아야만 했던 박정수의 심경이 어땠을까. 희철은 괜히 제가 서글퍼져 입술을 꼭 깨물었다.

 

 

 

 

얘가 동해, 얘가 시원이. 둘 다 SS급이고 우리보다 세 살 어려요. 아까 만났던 규현이보단 한 살 많구. ”

 

 

 

 

두 사람을 보는 정수의 눈에서 애정이 뚝뚝 떨어졌다. 그 눈빛이 얼마나 예쁘던지, 희철은 넋을 놓고 정수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물론 나도 그렇고, 규현이도 그렇지만 이 둘은 진짜 자기가 하는 일들을 좋아해요. 자기 능력에 대해 자부심도 크고. 그래서 열심히 하다가 이런 일이 생겼어요. 곧 일어나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맘이 아파서 자꾸 보게 되네요. ”

 

괜찮을 거야. ”

 

 

 

 

저답지 않은 위로의 말에 정수가 희철을 보고는 고마워요, 하며 씨익 웃었다. 그리곤 몸을 돌려 창틀에 걸터앉았다.

 

 

 

 

제가 김희철씨한테 매일 같은 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사실 이 일이 이렇게 위험해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난 김희철씨가 우리 팀이 되어 줬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다치는 일이 줄어들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좀 더 안전하기 위해서. 그래서 난 김희철씨가 필요해요. ”

 

“ ... ”

 

김희철씨 눈엔 내가 김희철씨를 설득하기 위해 센터에서 보낸 사람같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니에요. 난 김희철씨가 너무 필요해서, 김희철씨를 다른 팀에 뺏기지 않으려고, 그렇게 이기적인 의도로 접근했어요. 아마 정해진 대로 연수원 생활을 마치고 센터로 들어왔다면, 센터에선 김희철씨를 우리에게 주지 않을 테니까. ”

 

 

 

 

대충 려욱에게 들어서 상황이 어떠한지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길 본인에게 들으니 어째 마음이 더 아프고, 쓰리고 그렇다.

 

 

 

 

난 당신이 정말 필요해요. ”

 

 

 

 

*

 

 

 

 

정수를 따라 이 곳, 저 곳을 둘러보다 보니 어둠이 깔리고 밤이 되었다. , 거리가 그렇게 먼 것도 아니고 차가 없는 것도 아니라 연수원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규현이 굳이, 굳이 방도 많은데 자고 가라며 희철을 잡았다.

 

결국 또 겉보기와는 다르게 정에 약한 희철이 규현의 말에 알겠다, 수긍을 하며 오늘 쓰라고 주어진 방에 입고 왔던 옷과 소지품 몇 가지들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편하게 입으라며 정수가 건네 준 홈웨어로 갈아입는데, 옷에서 한가득 정수의 향이 풍겼다. 뭐지, 그냥 섬유유연제가 아니었나...

 

마음부터 몽글몽글, 따뜻해지는 기분에 웃는 얼굴로 1층으로 내려 온 희철의 귀엔 탕탕탕, 도마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실 소파에 앉아 팔짱을 끼고 웃는 얼굴로 부엌을 바라보고 있는 정수에게 뭐야?’하고 물으니 저 쪽을 보라며 정수가 부엌을 향해 턱짓을 했다.

 

부엌에선 앞치마를 두른 규현이 서툴게 칼을 잡은 채로 양배추를 썰고 있었다. 뭐야, 왜 요리를 직접 해? 희철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고갤 갸웃했다.

 

 

 

 

규현이가 김희철씨 왔다고 솜씨 발휘 좀 해 보겠대요. ”

 

... 요리를 잘 하나봐? ”

 

 

 

 

희철의 물음에 정수가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가는 물이 가득하던 밍밍한 라면과, 참기름에 튀겨져 느끼함의 극치를 달리던 잘리지 않은 통스팸을 떠올렸다. 그리곤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이건 규현이를 위해서라도 비밀로 해두는 게 낫겠지.

 

 

 

 

... 그냥, 열심히 하겠대요. ”

 

 

 

 

사실 솜씨라 할 건 없었다. 요리에 취미도 없던 규현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요리하는 프로그램을 한참 시청하던 때가 있었다. 요즘은 영 안 보는 것 같길래, 그냥 흥미가 떨어졌나보다 했었는데... 이렇게 요리를 해보겠다고 칼을 갈고 있을 줄은 몰랐다.

 

메뉴는 닭갈비라고 했다. 달걀프라이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가 무슨 닭갈비지, 싶었으나 팀 막내의 열정을 막고 싶진 않았다. 정 안 되면 센터 식당이라도 가지 뭐.

 

부엌에서는 경쾌한 칼 소리와 함께 음악 소리도 흘러 나왔다. 그 덕인지 셋 밖에 없는 숙소 분위기가 시끌벅적 흥겨웠다. 희철이 연수원에 있을 땐 다 각자 연수원 기숙사에 방을 배정받아 쓰고 있어서 몰랐는데, 이런 게 팀 분위기인가 싶다. 되게 즐겁네, 행복해 보인다.

 

 

 

 

간만에 시끄럽네. ”

 

, 형 왔어요? ”

 

 

 

 

규현은 오늘 자신이 극진하게 모시겠다며 종운에게도 저녁을 따로 먹지 말고 숙소로 오라 언질했었다. 어쩐지 불안한 느낌에 종운이 자기는 됐다고, 그냥 식당에서 먹겠다고 완강히 거절했으나 규현이 전화로 종운을 설득하다 못해 제 능력인 공간 이동을 사용해 종운에게 가 얼마나 찡찡거렸던지 결국 종운은 백기를 들었다.

 

 

 

 

, 다 됐습니다. ”

 

 

 

슬슬 맛있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정수가 테이블에 식기 세팅을 마치자, 타이밍 좋게 요리가 완성되었다. 아니, 양을 얼마나 만든 거야... 커다란 팬 가득한 닭갈비를 보며 종운이 경악을 하고 규현을 바라본다.

 

 

 

 

아니... 매일 시원이 형 먹는 것만큼 하다 보니까. ”

 

, 그럼 인정. ”

 

 

 

 

대식가인 시원이 있었다면 충분히 이 정도 양은 만들었어야 했다. 맞아, 인정. 종운이 고갤 끄덕거렸고 갑자기 또 형아들이 생각났는지 빨리 형들 나아서 같이 밥 먹었음 좋겠다하는 막내 규현을 보며 정수는 웃었다.

 

음식이 양이 많은 만큼, 잘 섞이지 않은 모양인지 어느 부분은 조금 짭짤했고, 어느 부분은 좀 더 매웠다. 음식에 예민한 편인 종운은 계속 짜다, 맵다 하며 규현을 구박하는 중이었다. 너 진짜 이것도 능력이다. 요리 하나에 몇 가지 맛이 있는 거야, 하면서.

 

 

 

 

난 맛 괜찮은데? ”

 

 

 

 

제 앞 접시에 한가득 음식을 덜어 온 희철이 한 입을 먹어보더니 그런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희철에게 쏠렸고, 이윽고 규현이 감동받은 얼굴로 희철을 바라보았다.

 

 

 

 

... , 진짜 형이랑 같은 팀 하고 싶어요. ”

 

 

 

 

그 말에 희철이 쑥스러운지 고갤 픽 돌렸고, 종운과 정수는 웃음을 터트렸다. 희철이 센티넬로 발현한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가족 같은 저녁 식사였다.

 

 

 

 

*

 

 

 

 

센티넬로 발현한 후, 모든 감각이 예민해진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원래도 예민한 편이던 희철은 예민한 감각마저 SS급이 되었다. 오늘도 잠자리가 바뀌니 잠이 오지 않아 창을 열어 놓고 있었다. 자꾸만 몸속에서 열이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 뭐지, 이 기분... 그냥 답답해서 그런가. 결국 희철은 그 열을 참지 못하고 방 베란다로 나왔다.

 

센터 안이 고요하다. 주변에 있는 다른 팀의 숙소 건물들에는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밤이라 그런지, 아니면 나무로 겹겹이 둘러싸인 부지라 그런지 공기가 맑아 희철은 맘 편히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어째, 몸속의 불이 조금 사그라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 ”

 

 

 

 

몇 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달칵 하고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옆 방 베란다로 정수가 나오는 게 보였다. 정수가 방에서 나오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희철의 두 눈과 마주하고는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희철을 바라 보았다.

 

 

 

 

김희철씨 안 잤어요? ”

 

잠자리가 바뀌면 불편해서 잘 못 자. ”

 

이런... 괜히 자고 가라고 붙잡았나보다. ”

 

괜찮아. 덕분에 저녁도 잘 먹고 좋았어. 연수원보다 편하긴 하다. ”

 

다행이네요. ”

 

 

 

 

솔직히 저녁에 먹은 닭갈비는 좀 짰다. 그래서 방금까지 희철은 얼마나 물을 마셨는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한 마디에 그렇게 눈을 반짝거리며 좋아하는 애를 보고 나니 뭐라고 할 수가 없어 희철은 꾸역꾸역 그 많은 음식을 다 먹었었다.

 

정수가 베란다 난간에 기대 숨을 크게 들이 쉬고, 내뱉었다. 쟤도 속에서 열이 나나. 방금까지 제가 하고 있던 것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정수에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옆선이 곱네. 전체적으로 눈코입이 날렵한 편인데도, 그게 합쳐지니 꽤 부드러운 인상이다.

 

 

 

 

넌 왜 안 자는데? ”

 

원래 밤에 잠을 잘 못 자요. 걱정이 많은가 봐요. 센터 들어오고부터 내내 그랬어요. ”

 

 

 

 

의외다 싶어 희철이 다시 한 번 정수를 힐끗 살폈다. 그냥 천성이 겁나 쎈 센티넬팀 팀장 같았는데 그건 또 아닌가보네.

 

 

 

 

안 그래 보이죠? 남들은 내가 되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줄 알아요. 근데 그, 하고 싶은 걸 얻기 위해서 고민해야 할 게 많네요. ”

 

나한텐 팀만 들어오면 세상만사 편할 것처럼 이야기해놓고선 왜 그 짐을 혼자 지려고 해? ”

 

.... 겁나 예리하신데... ”

 

 

 

 

정수가 장난 투로 말했다. 허나 희철은 그 농담에 그대로 넘어가 줄 생각이 없었다. 어쩐지 박정수가 조금 힘들어 보여.

 

 

 

 

팀장이잖아요. 내 손으로 내가 모은 사람들이니까, 내가 책임져야지. ”

 

너희 팀 애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것 같은데. ”

 

? ”

 

네가 자기들 챙기느라 이렇게 밤에 잠도 못 자고 서성거리는 거 보면 내가 그렇게 무능력한가 싶지, 고마울 것 같진 않다고. 팀원들을 좀 믿어보지 그래? ”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관점이네요. ”

 

그러니까 삽질 그만 하고 자, 빨리. ”

 

“ ...고마워요. 친구가 이래서 좋은가보다. 의지가 되네요, 김희철씨. ”

 

 

 

 

정수가 난간에 팔꿈치를 기대 턱을 괴고 희철을 빤히 바라보았다. 희철 역시 그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여태까지는 착하게 생겨서 되게 잘 들이댄다, 하고만 여겼었는데 지금 보니 생각이 꽤나 많이 담겨 있는 눈동자였다.

 

두 사람이 시선이 밤하늘에서 따뜻하게 얽혔다.

 

 

 

 

김희철씨. ”

 

. ”

 

우리랑 같이 있어 줘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길이잖아요. ”

 

“ ... ”

 

내가 김희철씨 미래에 날개를 달아줄게요. ”

 

 

 

 

정수의 말이 끝나자 희철의 주변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커다란 날개가 희철을 감싸는 형태로 생겨났다. 그리곤 날개가 활짝 펼쳐지자, 희철의 앞엔 웃는 정수의 얼굴이 보였다.

 

이만 들어가 볼게요. 희철의 말 덕에 오늘은 잘 수 있을 것 같다며 정수가 방 안으로 들어갔고, 희철은 아스라한 어둠에 혼자 남겨졌다. 그 어둠 속에서 희철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며 숨을 후, 후 내쉬었다. 아까 몸속에서 뿜어져 나오던 열기가 얼굴로 옮겨 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정수를 만나고 온 후로 생각이 많아진 희철은 훈련도 들어가지 않고 의무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려욱은 자리를 비우지도 못하고 종일 의무실 책상에 앉아 책만 읽고 있었다.

 

 

 

 

려욱아. ”

 

? ”

 

네가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

 

 

 

 

당연한 걸 물으시네. 려욱이 읽고 있던 책을 책상 위에 엎어 놓고, 저기 침대에 제 팔을 괴고 누워 죄 없는 천장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희철에게 시선을 옮겼다.

 

 

 

 

제가 형이라면... 얌전히 훈련받고, SJ팀 들어가겠죠. ”

 

? ”

 

형은 강하고 쓸모 있는 센티넬이니까. 센티넬이 가진 능력은 특별해요. 그리고, 그 능력을 제대로 써줄 줄 아는 팀에 들어가는 건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박팀장님은 그런 능력이 있어요, . ”

 

 

 

 

그건, 그런 것 같긴 한데...

 

 

 

 

박팀장님은 그저 형이 SS등급이기 때문에 형을 원하는 게 아닐 거에요. 그렇게까지 따라다니시는데, 한 번 속는 셈 치고라도 믿어 보세요. ”

 

 

 

 

려욱의 신뢰감 있는 두 눈동자를 보며 어쩐지 든든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믿어보자. 저를 처음부터 편견 없이 대해준 려욱을 믿고, 제가 저주받은 능력을 가진 센티넬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 정수를 믿어보겠다 희철은 다짐했다.

 

 

 

 

*

 

 

 

 

저 가이딩 받을게요. ”

 

 

 

 

희철의 한 마디에 희철의 수치를 재던 관계자들이 놀란 눈으로 일제히 희철을 쳐다보았다. 그리곤 다들 혼비백산 한 상태로 어쩔 줄을 몰라 하다, 그 검사실 안에 있던 관계자 중 가장 높은 사람이 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당장 센터 내에 있는 상급 가이드들을 모두 불러오라 이야기했다.

 

 

 

 

아니요, 그 가이드들은 안 부르셔도 될 것 같은데요. ”

 

? 그럼 어떻게... ”

 

센터에 김종운 가이드 불러주세요. ”

 

...김종운이요? ”

 

 

 

 

종운의 이름이 나오자 관계자들이 놀란 얼굴로 서로 눈치만 보며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대체 뭐가 이렇게 놀라워? 희철이 불만스럽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 그게... 김종운이 그냥 부르고 싶다고 부를 수 있는 가이드가 아니라서... ”

 

올겁니다, 불러주세요. ”

 

 

 

 

담당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계속 어... ... ... ... 하며 어그를 팔아댄다. 아니 온다니까? 온다는데도, 왜들 저렇게 겁이 많으실까. 희철에게 종운은 그저 같이 밥을 먹으며 겁나 밥투정을 해대던 가이드 1인에 불과한데, 이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희철이 가이딩을 받겠다고 했다는 소식에 연수원 원장이 직접 내려왔다. 그리곤 희철의 상태를 살피다, 혹시 모르니 일단 연락이라도 해보라 지시했다.

 

그리고 잠시 후, 생각보다 훨씬 빨리 돌아 온 직원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에 모두가 희철의 얼굴을 경악한 채로 바라보았다.

 

 

 

 

... 온다는데요? ”

 

? ”

 

온답니다, 김종운. ”

 

 

 

 

잠시 후, 무슨 2층에 있다 1층에 내려오는 것 같은 속도로 종운이 연수원에 도착했다. 그새 희철은 제가 편한 곳에서 가이딩을 받겠다며 의무실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

 

 

 

 

반갑게 인사를 건네오며 의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종운의 뒤로 정수와 규현이 보였다. , 규현이 능력이 공간이동이랬지. 그제야 이 빠른 도착이 이해가 갔다.

 

연수원 직원들은 다들 땀만 뻘뻘 흘리고 있었다. 센터에서도 가장 높은 급의 가이드고 SJ팀의 임시 가이드까지 맡고 있는 종운은 정말 그야말로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 희철 못지 않을 정도로 까칠한 대외적인 성격 탓에 많은 사람들이 종운을 어려워하기도 했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SJ팀 팀장과 SJ팀 팀원이자 SS급 센티넬인 규현이 고작 희철의 가이딩을 보겠다고 함께 연수원으로 달려왔다. 연수원 직원들은 다들 오늘 업무가 끝나고 나면 무조건 한우를 먹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늘 희철이 훈련 땡땡이를 치던 그 침대에서 오늘은 가이딩을 받고 있었다. 관계자들과 정수, 규현, 그리고 의무실 담당자인 려욱까지 주변에 서서 희철을 구경하고 있었다.

 

종운은 자신에게서 흘러 나가는 가이딩 양을 느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독하다, 독해. 이렇게 부족했는데 어떻게 참았어요, 대체? ”

 

 

 

 

그 물음에 희철이 잠시 눈을 떠, 사람들 사이에 있는 정수를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곤 피싯 웃었다. 종운이 으이그... 으이그, 하고 혀를 끌끌 차며 희철의 팔을 툭 때렸다. 오늘 가이딩 끝나고 나면 한 턱 쏴요, 하면서.

 

어느 정도의 가이딩이 끝나고 종운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려욱이 희철을 향해 괜찮냐고 물어왔다. 그러자 잠든 것 마냥 미동도 없이 누워 있던 희철이 , 개운하다하며 맑게 웃어보였다. 어째 센터에 들어온 후, 처음 보는 김희철의 가장 해맑은 미소같다.

 

 

 

 

잘했어요. 수고했어요. 진짜 고생 많았어요. ”

 

 

 

 

아니 가이딩을 받은 건 나고, 한 건 김종운인데 왜 감동은 자기가 받고 그래. 한껏 감동한 얼굴로 희철을 바라보고 있던 정수가 다가와 그랬다. 그리곤 잘했다는 말을 연거푸 반복하며 희철의 어깨를 툭툭 쳤다.

 

가이딩을 받을 때 느꼈던 그 짜릿함과는 또 다른 황홀함에 희철의 얼굴이 붉어졌다. 결국 희철은 잠시 쉴 테니 자리를 물러달라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평소 답답하다며 가슴 위로는 이불을 덮지 않는 희철을 잘 아는 려욱이 고갤 끄덕였고, 왜 저러는지 이유를 알 것 같은 정수만이 살풋 미소를 띄며 의무실을 빠져 나갔다.

 

 

 

 

*

 

 

 

 

- 조규현 : 20/ 센티넬 / SJ팀 소속 / 능력 : 공간이동 / 등급 : SS

 

 

 

 

*

 

 

 

 

가이딩을 받고 나니 몸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자꾸만 몸 안에서 솟아오르는 것처럼 느껴지던 열이 사라졌다. , 그게 가이드 부족 현상이었나 보다. 이렇게 하나씩 깨달아가는 희철이었다.

 

몸이 가뿐해지고 나니 어쩐지 제 능력을 다시 한 번 제대로 마주하고 싶어졌다. 최근 신체 단련 훈련에 열심히 참여한 편이긴 했지만, 그 때마다 제가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제대로 펼쳐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무도 없는 곳에서 저 자신을 다시 한 번 시험해보고 싶었다.

 

희철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아무도 없는 훈련장을 다시 찾았다. 불은 켜지 않았다. 가이딩 후 안정 된 신체 능력 때문인지 어두운 곳에서도 눈이 밝았기 때문이었다. 희철의 능력은 독이다. 아직 자신의 능력에 대해 연구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이 능력을 펼쳐야 할지 희철은 잘 몰랐으나, 그래도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게 있어 저 문 앞에 보이는 꽃 화분에 손을 뻗었다.

 

 

 

 

“ ...... ”

 

 

 

 

빨간 꽃잎을 손가락으로 쥐고 눈을 감았다. 능력을 사용하는 방법은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고 했어. 마음을 내려놓고, 힘을 풀자. 그리곤 할 수 있다고 믿으며 눈을 떴더니 희철의 손가락에 쥐어졌던 꽃잎이 푸르죽죽한 이상한 색으로 변해 있었다.

 

제가 원해서 이 능력을 쓴 것은 처음이었다. 쓰겠다고 하니, 정말 써진다. 희철은 자신의 손이 신기하면서도 두려웠다. 그래서 마음껏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꽃이 아직 죽지 않았다면, 그 화분은 김닥터에게 가져가 보죠. ”

 

 

 

 

분명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은데, 문 쪽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빠르게 고갤 돌렸다.

 

 

 

 

김닥터의 능력으로 꽃잎 한 장 정도 살리는 건 문제도 아닐 거에요. ”

 

 

 

 

정수였다. 희철이 여기 있는 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 희철이 신기한 눈으로 정수를 바라보는 새에, 정수는 희철이 자신의 능력을 실험해 보던 화분 가까이로 다가와 화분을 안아 들었다.

 

 

 

 

꽃을 들고 있는 정수는 꽃보다 더 예뻤다. 그걸 인지하자마자 희철의 얼굴은 꽃만큼이나 빨개졌다. 센티넬이 되고 나면 오감이 발달하고 예민해진다더니, 아마 연애감정을 느끼는 마음 또한 그런 모양이었다.

 

 

 

 

너 따라가면 진짜 다 해주냐? ”

 

, 다해드려요. ”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정수를 보며 희철이 입술을 꼭꼭 깨물었다.

 

 

 

 

그럼 갖고 싶은 것도 다 줘? ”

 

, 다 드릴게요. ”

 

너 줘라, 그럼. ”

 

 

 

 

정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뭔가 이해 못한 표정인데, 저거.

 

 

 

 

. ”

 

... 접대 이런 거...? ”

 

“ ....? 미쳤어? ”

 

아닌가. ”

 

그렇게 똑똑하다는 애가 왜 말을 못 알아먹어... ”

 

? ”

 

 

 

 

무슨 말을 알아들어도 저렇게 알아 듣냐. 희철이 큰 손으로 제 뒷머리를 북북 긁으며 훈련장 한 쪽에 낮게 쌓여 있는 벽돌무덤 위에 앉았다.

 

 

 

 

연애하자는 거야, 너랑 나. ”

 

 

 

 

처음엔 저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고, 두 번째는 나한테 하는 이야기가 맞나 싶었으며, 세 번째론 그렇게나 저에게 꽂히던 희철의 시선이 사랑이었구나 싶었다. 상황 파악이 끝난 정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장 30분 동안을 한참 웃었다.

 

대체 왜 저러는 거야. 정수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웃는지 답답하다 못해 조금 서러워진 희철이 볼 안쪽을 깨물며 시선을 바닥으로 툭 떨어트렸다. 정수가 한참을 웃긴 했으나 그런 희철의 변화까지 못 알아챌 정도는 아니었던지라 금세 웃음을 그치곤 벽돌 무더기 위에 걸터앉아 있는 희철의 앞으로 다가가 바닥에 철퍽 주저앉았다. 그리곤 고갤 푹 숙이고 있는 희철의 얼굴 아래로 제 얼굴을 들이밀며 배시시 웃어보였다.

 

 

 

 

. ”

 

뭐긴요. ”

 

 

 

 

그러더니 희철의 양 볼을 제 손으로 잡아들고는 어안이 벙벙한 희철과 눈을 맞추다 그대로 입을 맞췄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나 지금 고백했는데? 희철이 놀라 눈을 번쩍 뜨다 꼭 감은 정수의 눈을 보고는 저도 눈을 감았다. 그러자 제 입술에 닿아 있는 정수의 말캉한 입술이 느껴졌다.

 

희철은 어설프게 벽돌을 짚고 있던 제 손을 바지에 대강 털고는 정수의 작은 뒤통수를 손으로 감싸 잡았다. 그리곤 살짝 고개를 트니, 부드럽게 느껴지던 정수의 입술이 벌어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긴 듯한 키스를 마치고 눈을 떴더니 어느새 이 곳은 해변으로 변해 있었다. 바다는 에메랄드빛으로 빛나고, 흰 백사장이 넓게 펼쳐진 곳에서 정수와 희철은 커다란 야자나무 아래 있었다. 깜짝 놀란 희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니 그대로 앉아 있던 정수가 웃으며 희철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주변 풍경이 키스를 하기 전, 이들이 있던 그 훈련장으로 다시 바뀌었고, 희철은 여전히 시멘트색 벽돌 앞에 서 있더라.

 

 

 

 

... 뭐야? ”

 

김희철씨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전 첫키스라서. ”

 

? ”

 

첫키스는 이런 곳에서 하고 싶었어요. ”

 

 

 

 

*

 

 

 

 

결국 희철은 정수의 바람대로 SJ팀에 소속되었다. 센터 상부에서는 SS급을 너무 한 곳으로 몰아 놓는 것은 아니냐, 혹은 저 천둥벌거숭이같은 놈들이 또 무슨 사고를 칠 줄 알고, 그 위험한 김희철을 그 곳에 넣는 것이냐, 하며 아주 난리도 아니었지만 그들은 희철의 ‘SJ팀에 안 넣어주면, 또 가이딩 안 받을거에요하는 배짱 두둑한 협박 아닌 협박에 백기를 들었다.

 

매일 와서 논리적으로 따박따박 따지던 박정수도 버거웠는데, 저 팀에 막무가내인 놈이 하나가 더 늘었어... 센터 관계자들이 좌절하는 소리가 SJ팀의 숙소까지 들린다며 규현이 신나 방방 뛰었다.

 

 

 

 

아니... 난 진짜 우리 팀장님이 첫 애인으로 저런 존나쎄 센티넬을 데려 올 줄은 몰랐다고. ”

 

우리 팀장님이 저런 날라리 센티넬을 만나려고 여태 혼자 그렇게... ”

 

 

 

 

희철이 정수와 함께 숙소로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소파 등받이에 턱을 기대며 문 쪽을 바라보고 있던 시원과 동해가 번갈아가며 중얼거렸다. 그 말을 곧이, 선명하게 들은 정수가 씨익 웃으며 두 사람을 향해 나비를 한 마리씩 날렸고 두 사람은 익숙하다는 듯 시원은 손가락으로, 동해는 입으로 훅 바람을 불어 나비를 부서트렸다. 정수의 나비가 노란 빛가루가 되어 공중에서 흩어졌다.

 

지난번에 정수가 병실에 누워 있는 두 사람을 보여주었을 땐 얼굴이 허여멀건한 게 정말 딱 곧 죽을 것 같은 모습이더니, 역시 최상위급 센티넬들이라 그런지 회복력이 장난이 아닌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언제 병실에 누워있었냐는 듯 멀끔한 모습을 하곤 정수를 놀리기에 바빴다.

 

 

 

 

헛소리들 하지 말고, 빨리 인사 나눠. 내가 졸졸 따라다니면서 스카웃 해 왔어. 어느 정도인지 말 안 해도 알겠지? ”

 

스카웃 맞아...? 첫 눈에 반해서 따라다닌 거 아니고...? ”

 

쓰읍, 헛소리들 한다. ”

 

팀장님을 만난 게 몇 년짼데, 누워 있는 그 며칠 사이에 애인을 만들지 몰랐다구여. 그렇다고 우리 버리면 안 돼, . ”

 

당연하지, 빨리 인사나 해. . ”

 

 

 

 

동해가 입을 삐죽 내밀고는 먼저 희철의 손을 잡아왔다. 희철이 움찔 떨며 손을 빼냈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SJ팀으로 들어온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자신의 능력이 안정화되지 않은 만큼 남들과의 접촉은 꺼려지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 희철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정수가 걱정스레 희철을 바라보았고, 희철 역시 정수와 눈을 맞추려는데 털털하고, 조금 무딘 편인 동해는 희철이 손을 빼냈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다시 한 번 희철의 손을 잡곤 아래위로 크게 흔들며 이동햅니닷!’ 인사를 건넸다. 그 모습에 정수의 눈에 잠시 서렸던 걱정이 싹 사그라들었다. 그래, 내가 잠시 우리 팀원들을 잊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동해의 일방적인 악수가 끝난 후 시원은 아예 처음 본 희철에게 포옹으로 인사를 하며 잘 지내봐여 형!’ 하고 큰소리로 씩씩하게 외치더라.

 

이에 희철 역시 경계를 풀었는지, 긴장이 녹아 사라진 목소리로 핫, 핫핫, 하고 크게 웃더니 동해와 시원의 어깨를 툭툭 치며 제가 먼저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행이다, 진짜. 정수가 후련하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돌려 스트레칭을 하면서 환하게 웃어 보였다.

 

 

 

 

*

 

 

 

 

시덥잖은 농담만 툭툭 해대길래 별 신경 안 썼는데... 잘하네. ”

 

 

 

 

그 말에 정수가 슬쩍 희철을 쳐다보고는 다시 훈련장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잘하죠. 쟤넨 어릴 때부터 저러고 놀았는걸. ”

 

너도? ”

 

그럼요. 제가 쟤네들 연수원 들어올 때부터 봤어요. ”

 

 

 

 

문득 희철은 제가 늦게 발현된 사실이 조금 억울해졌다. 어차피 높은 등급으로 센티넬 발현 될 거, 빨리 발현됐으면 박정수가 어릴 때 어땠는지 다 볼 수 있었을 거 아니야. 아마 등급이 엇비슷하니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거다. 이렇게나 예쁜 걸 보면 어릴 때도 분명 천사 같았을 텐데. , 아쉬워.

 

 

 

아마 몇 년 후의 김희철씨는 우리 중에 가장 셀 거에요. 센티넬 능력은 훈련을 거듭 할수록 더 강해지기 마련인데, 김희철씨는 이제 시작이니까. ”

 

너 때문에 그래. ”

 

나 때문에요? ”

 

모르는 척 좀 하지 마. 내가 훈련하는 이유는 다 너야. ”

 

 

 

 

희철은 제 마음에 이렇게나 솔직했다. 센티넬들 자체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 때문인지 워낙 자신감이 넘치는 편이다 보니 팀원들의 넘치는 애정표현을 많이 받고 지낸 정수이긴 했지만, 희철로부터 느껴지는 마음은 조금 달랐다. 그래서 정수는 희철과 함께 있을 때면 여태까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설레고 행복했다.

 

 

 

 

그래서 내가 달아줬잖아요, 날개. ”

 

 

 

 

정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희철의 뒤로 지난 밤에 보았던 하얗고 큰 날개가 빛을 내며 펼쳐졌다. 비록 환각이긴 하지만, 정수의 마음을 오롯이 담고 있는 상징이란 걸 잘 아는 희철이 웃으며 정수의 손을 잡았다.

 

 

 

 

아 머에여! 우린 훈련하는데! ”

 

 

 

 

멀리에서 훈련을 하다 희철의 등에서 빛나는 날개를 발견한 규현이 볼을 퉁퉁 부풀린 채로 제 능력을 사용해 한 달음에 정수와 희철 곁으로 다가왔다.

 

 

 

 

, 나도 해줘여. 희철이형만 저런 거 해주고! ”

 

꺼져라. 애정의 표현이야. ”

 

, 혀엉... 팀장니임... ”

 

 

 

 

지난번엔 막 요리도 맛있다고 해주고 해서 다정하고 친절한 형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넘나 까칠하고 야생미 넘치는 성격이 아기고라니같은 규현의 마음엔 조금 상처가 되었다. 그래서 규현은 동그랗고 커다란 눈동자에 서러움을 한 가득 담고는 정수의 팔을 붙잡았다.

 

 

 

 

애한테 그러면 안돼요. 규현인 진짜 삐진단 말이에요. ”

 

 

 

 

정수가 퉁퉁 부풀어 오른 규현의 볼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고는 눈을 살포시 감았다. 그 다음 눈을 뜨니 규현의 등 뒤에는 커다랗고 화려한 희철의 날개와는 달리 아기 천사 같은 작은 날개가 빛을 뿜으며 생겨났다. 제 등에 생긴 날개를 고갤 돌려 확인한 규현은 예상외로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다시 훈련장 안쪽으로 향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정수는 마치 마법이라도 쓰는 듯 허공에 손가락을 뻗어 콕콕 찌른다. 그러자 훈련 중이던 동해와 시원, 그리고 한쪽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며 방사 가이딩을 하고 있던 종운의 등에까지 규현에게 만들어준 것과 동일한 날개가 달렸다.

 

아마 팀원들에게는 정수의 이런 장난이 '팀장님의 사랑' 정도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다들 훈련 중이던 것을 멈추곤 제 등의 날개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었다. 작전 나가서 인상 딱 찌푸리면서 싸울 땐 프로다 싶다가도, 이럴 때면 딱 20대 초반 보통 남자애들 같단 말이야. 정수가 흐뭇하게 웃어보였다.

 

 

 

 

갑자기 다들 뭐 해? ”

 

 

 

 

위험이 있는 현장도 아니고, 그냥 합동 훈련이기 때문에 형식상 가이딩을 쏘기만 하면 되는지라 굳이 훈련 모습을 지켜볼 필요가 없어 책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종운이 갑자기 조용해진 훈련장 분위기에 고갤 들고 물었다. 그러다 팀원들의 등에서 반짝거리는 가루라도 뿜는 것 마냥 빛나는 아기 천사 날개를 보며 고갤 갸웃하다 문득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나 다를까, 저 날개가 제 등에서도 빛나고 있지 않던가. 기겁을 한 종운이 정수를 향해 당장 이거 떼지 못해, 하며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귀엽고 예쁜 걸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의 종운이기에 일부러 저기에도 달아놓았더니 예상했던 반응이 나온다. 그게 재미있어 다들 웃음이 터졌다. 정수 역시 이런 상황이 즐거웠는지, 또 한 번 능력을 써 종운의 머리 위에 엔젤링을 달았다. 그러자 종운이 더 이상 안되겠다며 읽고 있던 책을 바닥에 훅 던지고는 정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수가 오, 오 하고 무서운 척을 하며 희철의 등 뒤로 숨어 빼꼼 고개만 내밀었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다며 종운이 잠깐 걸음을 멈추고 허, 하며 헛웃음을 내뱉는데 이번엔 종운의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저거 김희철씨가 그랬어요? ”

 

. ”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희철의 얼굴에 정수가 또 한 번 꺄르르, 웃음이 터졌다. 대충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한 훈련장 안의 팀원들도 웃음을 터트리며 희철의 능력으로 발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 종운의 주변으로 몰려가 종운을 끌어안거나 간지럽히는 장난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진짜 올해는 SJ팀 꼭 그만두고 만다. 이 미친놈들! ”

 

 

 

 

종운의 울부짖는 소리가 훈련장을 너머 바깥으로 흘러 나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안쪽을 슬쩍 들여다보며 도리도리 고갤 저었다. 또 시작이네, SJ... 하면서.

 

 

 

 

*

 

 

 

 

- 김희철 : 24/ 센티넬 / SJ팀 소속 / 능력 : / 등급 : SS

 

 

 

 

*

 

 

 

 

[Fin.]







***


옼ㅋㅋㅋㅋㅋㅋㅋㅋ첫 센티넬물!

막 날아다니면서 싸우는 건 진짜 제가 자신도 없고, 그리고 또 합작 마감 시간에도 안 맞고 해서 못 넣었는데 이렇게 써놓고 보니 또 막 보람차고 그럽니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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