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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 31. 22:07 - 가루비0404

[은총] 우성 오메가 이혁재(너는 그저, Simply beautiful)






우성 오메가 이혁재(너는 그저, Simply beautiful)

W. 가루비

 





[영어사전] Simply beautiful : 정말 아름다운.

 

 

 

 

 

 

 

너 요 며칠 니 애인 안 달고 다니더라? ”

 

“ ... ”

 

“ ? ”

 

그건 왜 물어? ”

 

? 아니, 그냥... ”

 

우리 혁재한테 관심 있어? ”

 

, 내가 무슨... ”

 

관심 꺼. ”

 

 

 

 

보통 우성 알파들은 타고난 저들만의 우월감이 있어 베타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게 십상이었으나 유명한 우성 알파 가문에서 태어난 정통 우성 알파에, 재력까지 좋던 시원은 저의 죽마고우이지만 베타인 혁재 때문인지 교내의 베타들과도 서스럼 없이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그래서 혁재와 같은 반이어서 시원과 자주 마주쳤기에 꽤 친하게 지내던 민재가 요 며칠 결석 중인 혁재와 떨어져 혼자 다니는 시원을 발견하고 장난을 걸었더니 시원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웃음기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이젠 너랑 이야기 할 일 없을 거야. 혁재가 베타가 아니면 난 베타들을 상대 할 이유가 없거든.

 

 

 

 

 

 

*

 

 

 

 

 

 

혁재는 베타다. 아니, 그렇게 태어났었다. 혁재의 집안은 대대로 우성 오메가를 배출해 낸 명문 우성 오메가 집안으로, 혁재와 조금 나이차이가 나는 하나뿐인 누나는 제가 원하는 우성 알파를 점찍어 스무살이 되자마자 일찌감치 결혼을 했다. 아버지도 우성 알파, 어머니도 우성 오메가, 누나까지 우성 오메가인 그 집안에서 홀로 돌연변이처럼 베타로 태어난 혁재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막내아들로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는데, 그래서인지 비슷한 최상위 계층인 시원네 가문과도 어릴 때부터 많은 교류가 있어 생일이 단 며칠 차이밖에 나지 않는 시원과는 어릴 때부터 가장 친한 사이로 커왔더랬다.

 

허나, 그 우성 유전자가 아예 사라질 일은 없었던 건지 혁재는 고등학교 2학년, 18살 생일이 되던 날 마치 살이 타들어 가는 것 같은 고통과 함께 우성 오메가로 발현했다. 모두가 어떻게든 인연이 닿아 보려고 안달인 명문 우성 오메가 집안에서 새로 탄생한 우성 오메가의 소식을 듣자마자 여러 가문들에서는 값비싼 선물을 보내왔고, 혁재의 부모님은 제 아들이 태어나서 처음 겪는 고통이 최대한 덜하도록 집안의 주치의를 매일 불러들이는 것은 물론이요, 몸에 좋다는 듣도 보도 못한 보양식들을 구해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혁재에게 향이라도 맡아 보라며 수시로 들이밀곤 했다.

 

그런 혁재의 소식을 듣자마자 기쁨에 찬 시원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혼자 자전거를 타고 밤새 한강을 달렸더랬다. 그래, 어쩐지 혁재가 베타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나 정이 가더라. 그렇게나 맘이 가더라. 그렇게나 예뻐 죽겠더라.

 

허나 그런 기쁨도 잠시, 혁재는 이제 다음 주 등교부터는 저와 같은 반이 된다는 소릴 들었다. 혁재와 앞으로 쭉 붙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미치도록 행복했으나 그 말은 즉, 그 동안 혁재가 명문 오메가 집안 자식이던 말던 간에 베타이기 때문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그 수많은 알파들의 눈앞에 혁재를 노출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였으며, 앞으로의 나날들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물론 그게 그렇게 크게 걱정되는 건 아니었다. 본인은 제 오메가 하나 지킬 힘도 없는 나약한 알파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혁재는 1주일간의 첫 히트싸이클을 혹독하게 겪으며 우성 오메가가 되었다.

 

 

 

 

 

 

*

 

 

 

 

 

 

혁재가 1주일 간 집에서 쉰 후 다시 등교를 하던 날, 반을 옮긴 첫 날인 것, 그리고 우성 오메가로서 가족 이외의 사람들을 처음으로 만나는 날인 것을 대비해 시원이 아침부터 혁재의 집엘 들렀다. 시원이 등하교 할 때 늘 타고 다니는 까만 벤츠가 혁재네 집 대문 앞에 멈추자, 그 앞에서 미리 혁재 부모님의 출근을 위해 차를 대기시켜 놓았던 기사님이 초인종을 누르며 시원의 도착을 알렸다.

 

 

 

 

“ ...아빠, 그만 울어요. ”

 

혁재야. , 내 새끼를 알파놈들이 득실거리는 학교에... 끄흡... ”

 

당신도 알파잖아. ”

 

... ... 아들, 아빠 말고 알파는 다 늑대란다. ”

 

 

 

 

저 집안의 혁재 사랑을 익히 모르던 바는 아니었으나(우성 오메가 집안에서 태어난 베타였기에 내 새끼가 혹시 소외감이라도 느낄까, 유독 혁재를 감싸고돌던 집안 분위기가 있었다.) 자식을 등교시키며 문 앞에서 회장님이 저렇게 우실 정도인 줄은 몰랐던 시원이 잠시 숙연해지며 기사님과 어색한 웃음만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여기까지 왔는데 차 안에만 있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싶어 차에서 내렸더니 시원을 발견한 혁재의 아버지가 늑대가 내 새끼를 데리러 집 앞까지... ..’하며 또 다시 울음을 터트리셨다.

 

 

 

 

시원아. 혁재 데리고 빨리 학교 가. ”

 

 

 

 

아저씨, 아줌마 안녕하세요. 인사만 건네고 그 앞에서 어찌 할 바를 몰라 하던 시원을 향해 혁재의 어머니는 혁재의 등을 떠밀었다. 그리곤 자신의 옆에서 연신 눈물을 흘리는 남편의 등을 토닥이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직 혁재가 여러모로 위험할 거라는 건 네가 더 잘 알 거라고 믿어. 혁재 좀 잘 부탁한다, 시원아. ”

 

엄마. 쟤가 제일 위험할걸. ”

 

 

 

 

어찌 된 일인지 결혼해서 다른 집에 사는 혁재의 누나까지 혁재의 등굣길을 배웅하고 있었는데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닌지라 시원은 누나의 날카로운 눈빛을 맞아가며 또 한 번 어설프게 웃었다. 그렇게 혁재의 가족 전체에게 한 마디씩 듣고 나서야 시원은 혁재를 데리고 등교할 수 있었다.

 

 

 

 

이게 네 향이었구나. ”

 

? ”

 

흐음... 시원하다. 너 같네, 진짜. ”

 

 

 

 

차를 타고 나서 시원의 이젠 괜찮아?’ 라던가, ‘아직 아프진 않아?’ 라던가, ‘많이 힘들었지?’와 같은 질문세례가 끝난 다음에 쭉 이어지던 침묵을 걷어내고 혁재가 물었다. 알파와 오메가에게는 베타들은 맡지 못하는 특유의 향이 있다고 하던데, 시원의 향은 쾌청한 여름날, 나무 그늘 아래 서 있을 때 불어오는 바람 같았다.

 

 

 

 

너랑 태어날 때부터 알았는데, 너한테 이런 향이 나는 줄 이제야 알았어. ”

 

 

 

 

그 말에 시원은 고갤 숙이며 픽 웃더니, 이내 혁재의 목덜미에 제 얼굴을 묻었다. 혁재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언젠가는 혁재를 제 짝으로 맞이하겠다 결심한 시원의 예행연습이었다. (알파와 오메가는 알파와 오메가가 관계 중 서로의 목을 무는 것으로 각인을 한다.) 당황한 혁재가 뭐, 뭐해애... 하고 말을 늘이며 물으니 혁재에게서 떨어져 다시 제 자리에 앉은 시원이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며 고갤 돌렸다.

 

 

 

 

너한테도 좋은 향기 난다. ”

 

 

 

 

그것도 진짜 어마어마하게 달아. 시원의 심장이 저릿해졌다.

 

 

 

 

 

 

*

 

 

 

 

 

 

시원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혁재와 함께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소란스럽던 교실이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조용해지며 모두의 시선이 혁재에게 돌아왔다. 시원조차도 그들에게는 그저 혁재의 배경이 된 것 마냥 아웃오브안중이었달까. 그런 시선을 애써 모른 척 털어낸 시원은 담임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혁재의 자리도 무엇도 정해진 게 없기에 일단 혁재를 자신의 자리에 앉혔다.

 

 

 

 

“ ...., 이혁재? ”

 

 

 

 

혁재가 자리에 앉자마자 저 앞 쪽에 앉아 혁재를 바라보고 있던 남자애 하나가 혁재와 시원을 향해 똑바로 걸어왔다. 그의 입에 걸린 미소가 불안해 시원은 혁재의 어깨에 제 한 손을 얹었으나 그런 시원을 아는지 모르는지 혁재는 그 남자애를 알아보며 덩달아 싱긋 웃었다.

 

 

 

 

동해, 안녕. ”

 

 

 

 

잠시 동해가 혁재를 어떻게 알더라, 하는 생각이 시원의 머릿속을 지배했으나 혁재의 집안을 떠올리고는 궁금증을 털어냈다.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혁재는 우성 오메가 집안의 자식이었고, 혁재의 가족들은 혁재가 베타라고 해서 온갖 우성 알파, 오메가들이 모이는 사교 모임에 혁재를 배제시키지 않았다.

 

그러니 아마 혁재가 동해와 안면이 있는 사이라면 그 모임에서 만났겠지. 이 반의 여러 알파들은 그 정도 집안의 자제들이었으니까.

 

 

 

 

너 맞구나. 이야기는 들었어. 축하해. ”

 

축하는 뭘... ”

 

 

 

 

축하한다며 제 손을 내미는 동해에게, 혁재가 저도 모르게 덩달아 손을 내밀자 동해는 입술을 일자로 만들며 씨익 웃고는 잡은 혁재의 손을 끌어다 제 코에 댔다. 아까까지만 해도 시원이 제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을 땐 그리 당황한 기색이더니, 지금의 혁재는 아무렇지 않은 듯 동해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그 반응에 애가 닳는 건 오로지 시원뿐인 것 같았다.

 

 

 

 

바닐라 냄새. ”

 

? ”

 

내가 좋아하는 향이야. ”

 

그래, 고마워. ”

 

 

 

 

... 바다 냄새. 흰 조각구름이 떠 있는 에메랄드 빛 바닷가를 떠올리는 향이 동해에게서 물씬 풍겼다. 넌 이렇구나.

 

동해에게서 풍겨오는 향을 흠뿍 들이 마시고 있는데, 그런 혁재를 가만히 보고 있던 시원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혁재의 얼굴을 직접 손으로 돌려 저를 보게 만들었다. 아까처럼 예민한 목에 얼굴을 묻는 등의 행동은 한 적이 없긴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워낙 집안 자체가 스킨십이 자유로운 시원인 걸 알다보니 혁재가 아무렇지 않은 눈으로 시원을 올려다보았다.

 

허나 그런 혁재의 얼굴을 읽은 시원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었다. 내가 아깐 왜 진작 몰랐지.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혁재는 이런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쌍커풀 없는 큰 눈이 도롱도롱 물기를 머금은 게 처량해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냥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제 나이의 선량한 청소년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혁재의 눈매에 붉음이 서렸고, 눈동자엔 별빛이 박혔으며, 입꼬리엔 도도한 웃음이 물들었다. 맙소사. 왜 그걸 생각 못 했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 오메가.

 

이혁재가 각성했다. 누구든 제 마음대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존재라는 우성 오메가로서.

 

 

 

 

 

 

*

 

 

 

 

 

 

반장인 시원이 담임에게 불려간 후, 시원의 과보호로부터 겨우 해방 된 혁재는 쫄래쫄래 본인이 원래 소속되어 있던 반인 8반으로 향했다. 우성오메가가 되었고, 그래서 이젠 1반 아이들 외에는 거의 학교생활 대부분을 함께 할 일이 없을 거라는 이야길 들었지만 그래도 혁재에겐 불과 1주일 전까지만 해도 함께 일과를 보내던 친구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을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8반 교실로 걷고 있는데, 걸음이 무거웠다. 이전과는 다르게 혁재가 걸을 때마다 저에게 박혀 오는 생경한 시선들이 혁재의 발목을 잡아 왔기 때문이었다. 내가 괜한 짓을 했나. 단 한 번도 우성오메가로서의 삶을 살아보지 않았던 터라, 걱정했던 바가 없던 혁재가 드디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자각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예쁘네. ”

 

 

 

 

진득하게 붙어 오는 시선에도 불구하고 나름 착실히 제 갈 길을 가고 있던 혁재의 걸음은 아직 반 밖에 오지 못한 5반 앞에서 붙들리고 말았다. 누구야. 제 팔목을 세게 잡아 오는 그 손에 인상을 찌푸리며 상대의 가슴팍에 붙은 이름표를 쳐다보았다. 2학년인 혁재는 하얀색 이름표를 달고 있었고, 1학년은 파란색, 3학년은 빨간색이었다. 지금 이 사람은 빨간색 이름표를 달고 있으니까 3학년. 그리고... 김희철.

 

 

 

 

일주일 동안 소문만 무성하더니... 그 값 한다, . ”

 

저기요, 저 지금 좀 불쾌한데... ”

 

 

 

 

우성 알파들의 기는 남달랐다. 그것은 그들이 사회에서 남들보다 높은 위치에 군림할 수 있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였다. 학교에서도 일반 학생들이 우성 알파들에게 대적하는 일은 없었다. 물론 우성 알파들은 일반 베타들을 상대조차 하지 않으니 그들과 문제를 일으키는 일도 없었지만.

 

이거 봐라? 우성 오메가라더니 주눅도 안 드네. 눈은 꼭 겁먹은 강아지처럼 생겨서는 쫄지도 않고 희철에게 대답하는 혁재를 보며 희철은 마음이 동했다. 그러니까 조금 풋풋하게 말해서 동했다지, 실은 갖고 싶어 죽을 것만 같아졌다. 희철은 우성 알파였다. 그리고 혁재는 우성 오메가였다. 우성 오메가는 오로지 우성 알파의 짝이었다. 그러니 혁재 역시 제 짝이 될 수 있을 터였다.

 

 

 

 

애기야. . ”

 

“ ... ”

 

 

 

 

혁재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자신을 쳐다보건, 희철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예뻐 죽겠다는 얼굴로 혁재의 얼굴을 꼼꼼히 뜯어보고는 혁재의 앞에 제 손을 손바닥이 위로 보이게 펼쳐 놓았다. 이 놈이나, 저 놈이나 죄다 손을 못 잡아서 안달들이야. 혁재는 잠시 아까 제게 악수를 청하는 척, 손을 잡아 오던 동해를 떠올리고는 희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옛다, 하며 그 위에 제 손을 얹어 주었다. 그러자 희철이 아 이거 진짜 귀엽네, 하고 풉 웃음을 터트리더니 혁재의 손을 꼭 쥐고 들어 손목 안쪽에 쪽 입을 맞췄다. 그 순간, 희철의 주위로 진한 장미향이 퍼졌다. 이 사람은 장미향이구나. 처음엔 남자가 무슨 장미향인가 싶다가도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절 바라보는 저 얼굴을 보아하니, 화려하니 예쁜 게 꼭 저같은 향을 가졌구나 싶었다.

 

 

 

 

저희가 그럴 사이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

 

애기. ”

 

“ ...? ”

 

내가 단 건 진짜 딱 질색인데, ”

 

“ ... ”

 

넌 좀 끌리네. ”

 

 

 

 

.....

 

그제야 혁재는 제 아빠인 이회장이 왜 아침에 절 등교시키며 그렇게나 울었던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

 

 

 

 

 

 

혁재는 아까부터 칠판만 똑바로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힐끔힐끔 저에게 꽂히는 알파들의 시선이 그 이유였는데, 그 중 가장 따가운 시선은 다름 아닌 시원이었다. 담임인 정수는 시원의 사리사욕을 고려해 줄 생각이 없었다.(우성 알파들과 우성 오메가를 몰아 배치해 두는 반에는 집안이 좋은 아이들이 많아, 그 아이들을 쉽게 다루기 위해 담임 역시 우성 알파로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에 정해진 기본 매뉴얼대로 혁재의 자리를 교실의 남는 자리에 배치했다. 그런데 하필 그 자리가, 지난 주 짝을 전학 보낸 동해의 옆자리일 줄이야. 아까 혁재와 반갑게 아는 척을 하던 그 모습이 눈에 밟혔던 시원은 수업 시간 내내 날카로운 눈으로 혁재를 바라보느라 평소 좋아하던 수학 수업을 그대로 날려 버리고 말았다.

 

 

 

 

너 최시원이랑 싸웠어? ”

 

? 내가? ”

 

. 계속 너 째려보는데. ”

 

 

 

 

...나 말고 너 째려보는 것 같은데. 옛날에 모임에서 한 번인가 본 적 있던 동해였다. 동갑내기라고 소개를 시켜줬고, 누나가 동해의 형과 친구라고 해서 일단은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애였다. 그 때도 우성 알파 치고는 되게 다정하고, 순둥이 같다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그 기억에 눈치 없음까지 추가했다.

 

동해는 수업 시간 내내 턱을 괴고 혁재의 얼굴을 꼼꼼히 뜯어보았다. 꼭 혁재의 얼굴을 제 기억 속에 온전히 박아 두려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중간 중간 저도 모르게 혁재의 얼굴로 손을 뻗어 오는데 혁재는 그 때마다 척, 척 손을 들어 동해의 손을 막았다. 얘가 뭘 하던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는데 문제는 얘가 하는 짓을 다 받아 주다간 시원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시원은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긴 다리로 몇 걸음만에 이들의 앞에 섰다. 그리곤 동해의 책상을 발로 툭 치며 부리부리한 큰 눈으로 동해를 노려보았다.

 

 

 

 

, . ”

 

. 반장, . ”

 

너 나랑 자리 바꿔. ”

 

선생님이 이렇게 앉으랬는데? ”

 

“ ...이동해, 네가 언제부터 선생님 말을 그렇게 잘 들었다고? ”

 

나 결심했잖아. , 이번 학기는 존나게 우등생이 되어 봐야 겠다. ”

 

 

 

 

뭐지, 이 또라이는. 혁재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자 동해는 그 순진무구한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혁재를 향해 왜에, 우등생이 취향이야?’하고 물어왔다. 제 친구인 시원의 속이 어떨지가 너무나 뻔하게 보여 참으려 했으나 한 번 터진 웃음은 잘 멎지 않았다. 물론 이 웃음은 즐거움의 표현이 아니었다. 진짜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터진 웃음이었다.

 

그런 혁재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원의 얼굴엔 불쾌한 빛이 감돌았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재를 혼자 둘 수는 없어 혁재의 어깨를 잡아 자리에서 억지로 일으켰다.

 

 

 

 

, ? ”

 

매점. ”

 

지금? 쉬는 시간 5분 남았는데? ”

 

괜찮아. 가자. ”

 

 

 

 

진짜 괜찮나? 아니, 얘 반장인데...? 선생님한테 혼나는 거 아니야? 혁재가 당황스러운 눈으로 시원을 한 번 바라보고, 동해를 한 번 바라보고, 이어 시계까지 한 번 바라보았다. , 그 새 1분이 더 지났다.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는데 동해가 피식 웃으며 내가 말해줄게, 다녀와 그런다. 그러면서 내꺼 바나나우유, 하고 덧붙이는데 혁재가 결심한 듯 고갤 끄덕거리며 시원을 따라나섰다.

 

자리에 앉아 여전히 턱을 괸 채 혁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동해를 알아 챈 시원이 혁재 모르게 고갤 돌려 동해를 쳐다보며 또 한 번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댔다. 그리곤 보란 듯이 혁재의 어깨를 감싸 안는데, 그러던 말던 동해는 웃으며 시원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시간은 많아요, 치사한 새끼야. ”

 

 

 

 

그러더니 시원의 시선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자세를 고쳐 앉으며 표정을 굳혔다. 이미 어릴 때부터 우성 알파로 자라온 이들은 그 당연한 주의 사항을 잘 알고 있었다.

 

알파와 오메가는 발현 후 1년 동안, 기질 안정화를 위해 각인을 금한다.

 

그 대단한 집안의 막내아들이자 최상위 계층인 우성오메가 이혁재는 특히나 더 소중하게 보호받을 터였다. 그러니 시원이 어릴 적부터 혁재랑 같이 커왔다는 사실은 혁재를 원하는 알파들에게 있어 큰 영향을 끼치진 못할 것이다. 1년이란 시간은 꽤 길지, 친구야.

 

 

 

 

 

 

*

 

 

 

 

 

 

혁재는 아무런 잘못을 한 것이 없지만 시원은 지금 꽤 화가 난 상태였다. 저 하늘로 치솟은 눈썹과 굳게 다문 입술이 그 반증이었다. 그래서 혁재는 시원의 기분을 풀어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원랜 별로 감정 기복이 없는 편인 친군데, 어째 오늘따라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것 같아 혁재는 조금 신기했다.

 

 

 

 

딸기 우유 하나랑 피자빵 하나 주세요. 실론티도요. ”

 

 

 

 

딸기 우유와 피자빵은 혁재의 것이고, 실론티는 시원의 것이다. 워낙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친구라 그 정도는 잘 알고 있었던 시원이 혁재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주문을 했다. , 물어보지 않아도 어차피 그걸 먹을 게 맞긴 맞아서 아무 말 하지 않고 잠자코 있던 혁재가 문득 무언가를 생각해 냈다. , 바나나우유! 이동해가 사오랬는데...

 

 

 

 

저기, 아주머니. ”

 

, 학생. 필요한 거 있어요? ”

 

바나나우유도 하나 주세요. ”

 

 

 

 

바나나우유라는 말에, 이미 혁재와 제 몫의 것은 계산을 마치고 매점 앞 벤치에 앉았던 시원이 휙 고갤 돌렸다. 그러더니 혁재를 저만치 밀어내고 제가 지갑을 꺼내 돈을 내밀었다.

 

 

 

 

아니, 내가 사도되는데. ”

 

네가 걔 껄 왜 사. 됐어. ”

 

 

 

 

, 돈 굳어서 좋긴 한데... 혁재가 머쓱한 듯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아주머니가 내미시는 바나나우유를 받아 들다 그것마저 시원에게 뺏긴 후론, 그냥 벤치에 털썩 앉았다. 나 오늘 대체 뭐하고 있는 거지. 아직 점심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어쩐지 많은 일이 있었던 것만 같은 기분에 혁재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부스럭.

 

혁재가 한숨을 내쉬기가 무섭게 옆자리에서 종이 구겨지는 소리가 나더니, 그 종이가 걷어지고 사람이 일어났다. 깜짝이야! 시원의 눈치만 살살 보면서 여기까지 따라 왔더니 옆 벤치에 사람이 누워 있는 것도 몰랐다. 아니, 오늘 진짜 또라이들만 만난 것 같긴 한데... 이건 또 너무 갑작스러운 만남이잖아. 놀란 혁재가 제 옆에 앉아 휴대폰만 들여다보던 시원의 옷깃을 잡아 당겼더니 시원이 응? 하고 혁재를 바라보다 그 옆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나는 남자앨 보고 인상을 구겼다.

 

 

 

 

수업 안 들어가고 뭐 하세요, 후배님? ”

 

 

 

 

후배님? 그제야 그 애의 명찰을 보니 파란색이다. 진짜 1학년이네. 근데 최시원은 얠 어떻게 알지...

 

 

 

 

제 롤모델이 또, 최시원 선배님이시라... 선배님을 닮기 위해 땡땡이를... ”

 

“ ... ”

 

 

 

 

이건 또 무슨 패턴이지. 시원이 주변에 이런 애가 있었던가. 고갤 갸웃거리던 혁재가 다시 한 번 시원의 옷깃을 당기며 누구? 하고 물었다. , 쟤는... 하고 입을 열던 시원이 아, 하고 머뭇거리는 소릴 내더니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그 남자애가 기다렸다는 듯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저는 1학년 조규현이라고 합니다! ”

 

 

 

 

얼마나 예의가 바른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그렇게 인사를 하는데 혁재는 잠시 혹시 시원이 뭐 일진이라던가 그런 걸 하나 잠깐 고민했다. 허나 그렇다고 하기엔 혁재가 아는 시원은 너무나 정석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었고, 인사를 하는 규현도 눈동자가 이만큼 큰 게 꽤 선해 보이는 인상이라 혁재는 금방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며 고갤 휘저었다. 그런 혁재를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예쁘게 쳐다보던 규현이 90도로 굽히고 있던 허리를 펴며 혁재에게 악수를 청했다. 혁재는 그런 규현을 향해 예쁜 동생을 알게 됐다, 기쁘게 웃으며 덥썩 손을 잡았다.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혁재형. ”

 

네가 이혁재한테 잘 부탁할 일이 뭐 있는데. ”

 

에이, 알면서 뭘 물어요. . ”

 

 

 

 

규현이 예의바른 미소로 하하 웃으며 아직 붙들고 있는 혁재의 손을 시원이 탁 쳐내기 전까지 몇 번이고 흔들었다. 제 손이 규현에 의해 흔들리는 동안 혁재의 콧가에 싱긋한 시트러스향이 스쳤다. 그제야 아, 규현이도 알파구나 싶었고 시원과 오래 알고 지낸 사이 마냥 친근하게 구는 거 보면 알파 중에서도 우성알파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서울에 있는 알파들이 대부분 이 학교에 다닌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우리 학교에 우성 알파가 이렇게나 많을 줄은 미처 몰랐다. 우리 아빠가 알면, 또 울겠네 싶어 혁재는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

 

 

 

 

 

 

동생님 오셨나. ”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둘째를 임신 중이라 요즘은 회사에 나가지 않고 있는 누나만이 집에서 혁재를 반겼다. 그러고 보니까 아직 집에 안 갔네. 혁재는 누나가 집에 올 때마다 따라 오는 제 조카, 봄이를 찾았다.

 

 

 

 

봄이 학원 갔어. ”

 

학원? 4살인데? ”

 

그치? 고작 4살인데, 자기 딸이 피아노 천재라고 우기는 모 알파님이 계셔서. ”

 

... ”

 

 

 

 

형님... 뭐 그런 말씀을 하고 그러셨어요. 제 누나가 이를 바득 가는 걸로 보아선 남편의 고집에 어쩔 수 없이 한 수 접고 들어간 모양인데, 조만간 불타오를 저 집안 분위기가 보였다. 그래, 매일 느끼고, 또 느끼고, 아침에도 느꼈지만 우리 집안 여자 오메가들은 진짜 존나쎄야...

 

 

 

 

나 올라갈게. 봄이 오면 말해줘. ”

 

 

 

 

여느 집 남매가 그러하듯 혁재 역시 제 누나와는 크게 할 말이 없어, 제 사랑하는 조카가 오면 알려 달라는 말만 하고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아까부터 의미심장한 눈으로 혁재를 바라보던 누나가 야, 동생님 하며 혁재를 불러 세웠다.

 

 

 

 

? ? ”

 

오늘 시원이랑 같이 안 있었어? ”

 

“ ...아니? 같이 있었는데? ”

 

그런데도 이렇단 말이야? ”

 

뭐가? ”

 

“ ...됐고, 너 샤워부터 해라. 안 씻고 그냥 있다가는, 이따 아빠 오시면 또 한 바탕 우시겠어. ”

 

 

 

 

눈치가 없진 않은 혁재가 그제야 누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는지 제 몸 이 곳 저 곳을 킁킁거렸다. 오늘따라 보이는 우성알파들마다 죄다 손을 잡아채더니, 그 냄새들이 몸에 묻은 모양이었다. 그런 혁재의 행동을 소파에 편하게 기대 앉아 가만히 쳐다보던 누나가 이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혁재야. 우리 집안이 왜 대대로 명문 우성 오메가 집안인 줄 알아? ”

 

? 대대로 우성 오메가만 태어나서 그런 거 아니야...? ”

 

그런 것도 있는데, ”

 

 

 

 

잠시 뜸을 들이는 누나의 목소리에 혁재가 꼴깍 침을 삼켰다. 누나가 저러면 무섭단 말이야. 어릴 적부터 단 한 번도 누날 이겨 본 적 없는 혁재가 잔뜩 쫄아서는 비 맞은 강아지 꼴을 했다.

 

 

 

 

우성오메가 중에서도 우리 집안은 급이 달라, 혁재야. 모두가 나만 좋다고 안달인데, 얼마나 대단하면 같은 오메가들이 우릴 질투 할 생각도 못해.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 사회의 제일 꼭대기에 있다는 거야, 우리가. ”

 

... ”

 

그러니까 같지도 않은 새끼들이 들이대면, 가운데를 차 버려. 알겠지? ”

 

 

 

 

문득 혁재는 누나와 초중고 동창이었던 형님이 기분 좋게 취해 처남. 누나 학생 때 별명이 뭐였는지 알아? 여왕님이었어, 하핳하고 웃다가 누나에게 허벅지를 꼬집히던 때가 생각이 났다. ... 여왕님 자부심 진짜 짱인 듯.

 

 

 

 

 

 

*

 

 

 

 

 

 

시원은 눈치가 있는 편이었다. 그러니까, 그 말은 이틀 연속 혁재를 데리러 혁재의 집 앞까지 차를 몰고 오는 유난을 떨지 않았다는 것이다. 혁재네 집안도 시원네보다 더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았기에 혁재의 등하교를 담당하는 기사님이 계셨다. 베타인 기사님은 자신이 모시던 도련님이 우성 오메가로 발현했다는 사실에 꽤 신이 난 듯 싶으셨다.

 

 

 

 

희재 아가씨에 이어서 혁재 도련님 모시는 것도 영광이었는데, 이렇게 도련님까지 우성오메가 발현을 하셔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

 

아이... 아저씨, 뭘 그리 큰 일 이라고 그러세요. ”

 

걱정 마세요! 제가 잘 지켜 드리겠습니다! ”

 

 

 

 

기사님이 이상하리만큼 비장해보이시는 건 내 착각인가...?

 

 

 

 

 

 

*

 

 

 

 

 

 

여태까진 단 한 번도 차에서 내릴 때 내 앞 차에선 누가 내리는 지 따위를 신경 써 본 적이 없는데 오늘따라 갑자기 그게 보였다. 혁재가 탄 차와 혁재보다 먼저 도착한 앞 차의 문이 동시에 열리는 순간 앞 차의 주인과 눈이 마주쳤고,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 싱긋한 시트러스 향이 피어올랐다. , 이 향 낯익은데. 쟤 누구더라.

 

 

 

 

혁재형! ”

 

 

 

 

혁재가 향이 낯익다고 느낀 순간, 앞차의 주인인 규현이 혁재를 향해 달려왔다. , 좀 청소년 드라마 같은 청량함인걸...? 애가 깔끔하게, 싱그럽게 생긴 것도 있긴 한데, 이 시트러스 향이 뭔가 극적인 효과를 배가시키는 것 같기도 하고.

 

 

 

 

규현아. 나 궁금한 게 있는데... ”

 

, 말씀하세요 형! ”

 

너도 알파 발현한 지 얼마 안 됐어? ”

 

 

 

 

뜬금없는 물음에 규현이 큰 눈을 반짝거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도통 이유를 알 수가 없는 물음이었다. 규현은 잠시 혁재가 왜 이런 것을 묻는지 생각했다.

 

 

 

 

그건 왜요, ? ”

 

너 페로몬 갈무리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

 

 

 

 

우성 알파들은 제 페로몬 향을 자유자재로 숨길 줄 알았고, 이를 드러낼 때는 상대를 유혹할 때나, 강한 페로몬으로 상대를 압도시킬 때 뿐이었다. 물론 누군가와의 접촉이 있을 때 배어 나오는 경우도 있었고, 그래서 어제 만난 우성알파들과 악수할 때마다 맡았던 그들의 향은 접촉 때문이었다고 혁재는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규현일 보자마자 향이 났단 말이야? 혁재가 생각하기엔 그 이유가 단 한 가지였다. 규현 역시 혁재처럼 아직 기질 안정화가 되지 않은 알파였기에 제 의사대로 그것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

 

혁재의 질문을 통해 그 뜻을 읽어 낸 규현이 손으로 제 이마를 짚으며 웃었다. 그럴리가요, . 초등학생 때 발현했는걸요 이미. 페로몬은 형 꼬시려고 뿜은 건데. 허나 그 진실은 꼭꼭 숨겨둔 채 규현은 고갤 끄덕였다.

 

 

 

 

맞아요! 형도 아직 얼마 안 돼서 이거 공감하시는구나. 저도 빨리 다른 형들처럼 안정화 끝나서 제 맘대로 조절하고 싶은데... ”

 

 

 

 

일부러 불쌍해 보이려 끙끙거리며 이야기했더니 거기에 홀랑 넘어 간 혁재가 우리 같이 힘내자하며 규현의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 혁재의 손이 닿았던 곳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 이 형 느낌 장난 아니야, 진짜.

 

규현이 잠시 제 뺨에 손을 대고 자리에 서서 멍하니 있는 새 저만치 앞으로 걸어갔던 혁재가 뒤로 돌며 규현을 불렀다. 안 와? 안 들어갈 거야? 그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규현이 가여어, 하며 혁재를 향해 가볍게 뛰었다. 규현의 뒤로 은은하게 퍼지는 시트러스 향에 몇몇 알파와 오메가들이 반응하는 게 보였으나, 규현은 그런 것들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아니, 내 눈 앞에 이혁재가 있는데요? 내 취향, 좀 연상인 듯...

 

 

 

 

 

 

*

 

 

 

 

 

 

혁재가 교실에 들어가자 교실 창가에서 서성거리던 시원이 혁재를 향해 빠르게 걸어왔다. 그리곤 평소처럼 혁재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혁재의 주위에서 미세하게 풍기는 향을 맡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시원은 이 향을 알아도 너무 잘 알았다.

 

 

 

 

너 조규현 만났어? ”

 

? 어떻게 알았... , . 만났지. 앞 차에서 내리더라고. ”

 

걔랑 뭐 했어? ”

 

그냥 같이 걸어 왔.. , 이거! 규현이도 발현한 지 얼마 안 됐다며. 그래서 아직 페로몬 조절이 쉽지가 않대. 너도 알았을 거 아니야. 진작 말해주지! 나 동지 생겨서 완전 반가웠잖아. ”

 

 

 

 

? 조규현이 발현한 지 얼마 안 됐다구요? 시원은 어릴 적에 유난히도 자주 만났던 규현이 저보다 빨리 알파 발현을 했던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런데 뭐? 늦게 발현? 이 어린놈의 새끼가 어디서 수작질일까. 다음에 만나면 욕을 한 바가지 퍼부어 주리라 결심하며 시원은 아랫입술을 제 이로 잘근잘근 깨물었다.

 

 

 

 

쓰읍, 너 입술 깨무는 거 그거 하지 말랬지. ”

 

, ”

 

가만히 있어 봐. ”

 

 

 

 

시원에게 입술 깨무는 버릇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 버릇을 유난히 싫어하던 혁재가 오늘도 죄 없이 깨물린 시원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고는 제 교복 주머니에서 립밤을 꺼내 들었다. 혁재 역시 입술이 자주 건조해지는 편이라 늘 분신처럼 챙기고 다니던 립밤이었다. 뚜껑을 열고, 저보다 키가 좀 더 큰 시원을 위해 손을 높이 든 채로 시원의 입술에 꼼꼼히 발라 주었다. 그렇게 혁재의 신경이 온통 시원에게 쏠려 있는 새, 두 사람의 모습을 반의 알파, 오메가들이 번뜩이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혁재는 몰랐겠지만, 시원은 그 상황에서 얼마나 큰 승리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보여? 이혁재는 내 짝이 될 거야.

 

허나 그 당당함은 교실 뒷문으로 동해가 들어오자마자, 한여름 지붕 없는 평상 위의 아이스크림 마냥 빠르게 녹아 내렸다.

 

 

 

 

혁재야. ”

 

동해, 안녕. ”

 

 

 

 

동해는 책상 위에 가방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어쩐지 묵직해 보이는 가방이, 쟤가 어제 우등생 어쩌구 하더니 정말 공부를 할 생각인가 싶었는데 그 가방 안에선 혁재가 즐겨 먹는 딸기우유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미친 새끼. 저건 또 무슨 수작인데.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시원과, 동해의 저 행동이 당황스러워 어찌 대처해야 하는지 그것을 몰랐던 혁재가 서 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동해의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동해는 제 가방 안에 있던 딸기 우유를 다 털어내고 나서야 딸기 우유 두 개를 손에 들고 혁재와 시원이 있는 쪽으로 걸어 왔다. 그리곤 혁재의 앞으로 딸기 우유 하나를 내밀었다.

 

 

 

 

선물! ”

 

? ”

 

내가 조공하는 거야, 너한테. ”

 

 

 

 

그리곤 남은 딸기 우유 하나를 들고 시원을 슬쩍 쳐다보았다. 시원의 형형한 눈빛이 동해를 향해 있었다. 짜식, 기분 나빠쪄여? 오구오구. 동해는 남은 우유를 까서 한 번에 원샷을 하곤 빈 우유갑만 시원의 손에 쥐어주었다.

 

 

 

 

반장님! 분리수거 부탁드려요! ”

 

 

 

 

, 씨발... 혁재 앞이라 차마 거친 말은 할 수가 없었던 시원은 눈썹을 이만큼이나 치켜세우며 쓰레기통으로 우유갑을 던져 넣었다. 괜찮아? 혁재의 물음에 시원은 이마에 힘줄이 생길 정도로 억지로 웃어 보이며 혁재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분명 동해는 시원이 혁재 앞에서 함부로 굴지 못할 것을 깨닫고 일부러 시원을 살살 약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아까 조규현은 제가 발현한 지 얼마 안 된 알파라는 거짓말로 혁재를 살살 꼬아내더니, 이동해는 또 이런 식이야? 시원은 비록 혁재가 자신의 짝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사내였지만, 그렇다고 혁재의 자유를 뺏을 권리까지 본인에게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시원은 저들이 뭘 하던 간에 혁재가 다치지 않도록 그저 혁재를 옆에서 바라봐 주어야만 했다. 사실, 혁재가 구속받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 것도 한 몫 한 것이었고.

 

 

 

 

 

 

*

 

 

 

 

 

오늘따라 수업시간 내내 혁재는 졸음을 이겨내지 못했다. 아마 오메가 발현으로 인한 신체 변화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증상일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들어오는 선생님들도, 주변 아이들도 아무도 잠들어 있는 혁재를 건드리지 않았다.

 

어제는 수업 시간 내내 혁재를 쳐다보고 있느라 정신이 없더니, 혁재가 계속해서 잠들어 있으니 동해는 저도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혁재와 나란히 엎드려 잠을 청했다. 저 모습조차도 질투가 나서 견딜 수가 없던 시원이건만, 그래도 그 덕에 밀린 일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시원은 학교에서 맡고 있는 책임들이 많았다. 지금은 반장을 맡고 있지만, 다가오는 2학기에 있을 전교 학생회장 선거에도 나갈 예정이었다. 그리고 아마, 시원이 나가기만 한다면 그 자리는 시원에게 돌아올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다.

 

잠깐 자릴 비우는 건 괜찮겠지. 혁재가 오메가이긴 하지만, 아무나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우성 오메가이고, 그 옆에서 정신을 놓은 것 같긴 하지만 이동해는 분명 우성 알파다. 그래, 괜찮을 거야. 이동해가 또라이같지만 사리 분별도 못하는 정신 나간 또라이는 아니야. ... 맞아...

 

걱정스레 몇 번을 돌아본 다음에야 시원은 잠들어 있는 혁재를 두고 교실을 나섰다. 시원의 예상대로 그 옆에 앉은 동해 때문인지, 교실의 그 아무도 혁재를 힐끔힐끔 훔쳐보기만 할 뿐, 말 한마디 건네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허나, 다른 학년의 우성 알파라면 또 말이 달랐다. 어제의 치밀한 희철은 혁재의 손을 잡으며 혁재에게 살짝 풍기기만 할 정도로 제 향을 풀어놓았었기에 꽤 예민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시원은 혁재에게서 희철의 향을 읽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전혀 경계의 대상 안에도 넣어두지 않았었건만, 시원의 부재를 어떻게 알았는지 희철은 혁재의 교실을 직접 찾아왔다. 그리곤 혁재의 앞자리 알파에게 친절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자리 좀 비켜줬으면 좋겠다하니, 교내에서 유명한 우성 알파 중 한 명인 희철을 모를 리가 없는 그 알파는 네, 라던가 아니오, 와 같은 아무런 대답도 남기지 않고 자리를 비웠다.

 

 

 

 

예의바른 후배네. ”

 

 

 

 

고마워, 하며 싱긋 웃어 보이니 우성 알파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아름다운 얼굴에 자리를 비켜주었던 그 알파는 다리가 휘청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 모습에 남몰래 피식 웃은 희철이 혁재를 향해 몸을 돌려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팔을 괴고 잠들어 있는 혁재를 내려다보았다.

 

아가, 예쁘게 잘 자네.

 

거의 눈을 덮을 정도로 긴 앞머리를 손톱으로 한 올, 한 올 밀어 한 쪽으로 정리해주었다. 그러자 피부가 얇아 감은 눈 위로 비치는 실핏줄이 보였다. ... 뭔가 이것도 내 취향. 희철이 피식 웃으며 조심스레 그 눈동자 위로 제 손가락을 올렸다.

 

 

 

 

“ ..... ”

 

 

 

 

아무래도 눈은 좀 예민한 부분이었나보다. 제 눈꺼풀 위에 닿는 낯선 느낌에 잠에서 깬 혁재가 잠시 제 앞에 앉은 희철을 빤히 바라보았다. , 잠깐...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는데.

 

도롱도롱 굴러 가는 까만 눈동자가 아무래도 저를 기억해내려고 애쓰는 것 같아 희철은 자신의 진한 장미향 페로몬을 약간 풀었다. 그러자 아! 하며 김희철! 하고 자신을 기억해내는 혁재가 예뻤다. 자신을 보는 눈과,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 고운 입술이 아름답지 않을 리가 없었다. 희철은 당장이라도 혁재에게 입을 맞춰보고 싶은 충동을 없애기 위해 제 손톱으로 손끝을 꾹꾹 눌렀다. 히야, 이렇게 1년을 어떻게 버티냐. 진짜.

 

희철은 아무래도 제가 너무 고단한 상대를 선택한 건 아닌지 잠시 고민이 들었다. 허나, 갖기 힘든 상대만큼 매력적인 게 또 있을까. 너를 위한 준비기간이 길어질수록 너는 더 아름다워지겠지. 집안에 우성 오메가와 우성 알파들이 많은 희철은 우성 오메가들이 발현되고 나서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모습을 갖추게 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 자리 주인 있는데요. ”

 

, 친구가 양보해줬어. 착하더라고. ”

 

 

 

 

그 말에 혁재는 저어기 창틀에 앉아 이 쪽을 몰래 훔쳐보고 있는, 이 자리의 원래 주인을 바라보았다. 양보라고 했나? 딱 봐도 아닌 것 같은데여...

 

 

 

 

애기는 누가 잡아먹으면 어쩌려고 이렇게 무방비로 자고 있어? ”

 

잡아먹긴 누가 잡아먹어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 ”

 

 

 

 

희철을 향해 짜증을 내는 투로 대답을 하던 혁재가 문득 자신과 희철을 향해 쏠려 있는 눈빛들을 읽었다. 갓 잠에서 깬 혁재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훑으니 그 시선들이 유야무야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 사람 말이 완전 거짓말은 아닌가...? 혁재가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너 얘랑 짝이야? ”

 

. ”

 

얘 이동해지? ”

 

. ”

 

얘랑은 친해? ”

 

 

 

 

친한가...? 막 친하다, 할 만한 어떤 액션을 취한 적은 없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같은 반인데 친하지 않다고 하는 것도 좀 그렇겠지? 잠시 고민을 하던 혁재는 동해의 존재를 친구로 결론 내리고는 희철을 향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 친구에요.

 

 

 

 

애기야. 나 너무 서운하려고 그래. ”

 

“ ...? ”

 

얘랑도 친하고, 최시원이랑도 친하고, 너 아침엔 조규현이랑 같이 등교하더라? 그럼 나랑은 언제부터 친하게 지내줄 거야? ”

 

 

 

 

그걸 다 어떻게 알았지. 혁재가 곤란한 듯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어쩜 우리 애기는 당황한 것도 귀엽네. 그 모습도 예뻐 보여 포스스 웃었더니 혁재가 더욱 당황한 얼굴로 아, ... 그게... 하며 변명거리를 찾았다.

 

 

 

 

적당히 좀 해라, 적당히 좀. ”

 

... 동해, 안 잤어? ”

 

깼지. 누구 목소리가 들려서. ”

 

 

 

 

희철과 동해가 또 서로 아는 사이인 모양인지, 동해는 뚱한 얼굴로 희철에게 반말을 찍찍 뱉었고, 희철은 주변 애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던 말던 푸하하 웃으며 동해의 머리를 부비적거렸다.

 

 

 

 

애가 이렇게까지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좀 놔줄 줄도 알아라, 김희철아. ”

 

새끼. 형이라고 안 불러? ”

 

. ”

 

“ ..., 진짜 겁나 귀엽네. 이동해. ”

 

 

 

 

저기요... 나 이제 아웃오브안중? 어쩐지 희철의 관심이 동해에게로 옮겨 간 것 같아 혁재는 지금이 기회다 생각하고 슬쩍 앉아 있던 의자를 뒤로 밀었다. 그러자 드르륵, 들려오는 철제 소리에 희철과 동해의 시선이 혁재에게 쏠렸다.

 

 

 

 

애기. 어디 가려고. ”

 

“ ...... , 화장실... ”

 

화장실 갈 거야? 우리 같은 남자끼리, 같이 갈까? ”

 

아니.. ... 나중에 갈게요. ”

 

 

 

 

그리곤 또 한 번 혁재를 놀린 게 그렇게도 즐거운지 꺄르르, 꺄르르 신나게도 웃었다. 그러다 마치 두 사람이 짜기라도 한 것 마냥 일순간 표정을 굳혔다. 동해의 표정도, 희철의 표정도, 모두 저에게 말도 안 되는 수작을 걸 때의 그것이 아닌 느낌이었다.

 

 

 

 

, 얘한테 관심 있어서 오는 거 아니야? ”

 

. 맞아. ”

 

그딴 행동으로 어디 호감 좀 사겠어? ”

 

괜찮아. 난 몸이 섹시해서. ”

 

 

 

 

....시원아, 언제 와...?

 

혁재는 조금 울고 싶어졌다.

 

 

 

 

 

 

*

 

 

 

 

 

 

혁재는 괜히 긴장이 됐다. 기업 초청 행사는 어릴 적부터 자주 따라다니곤 했던 것이었으나, 제가 우성오메가로 신분이 바뀐 후엔 처음 가는 곳이었다. 뭐 입지, 어쩌지, 하며 며칠 전부터 긴장을 하던 혁재는 , 네가 뭐가 됐던 간에 넌 이안그룹 회장 아들 이혁재야라는 누나의 한 마디에 무슨 약이라도 먹은 듯 사르르 긴장을 풀었다. 그리곤 제 몸에 딱 맞게 제작된 흰색 스프라이트 무늬의 수트를 입었다. 너무 화려하지 않도록 모던한 블랙 타이를 매고 조금 긴듯한 앞머리는 헤어용품을 발라 양 옆으로 살짝 넘겼다. 얼마나 많이 행사를 다녔던지, 이젠 샵에 가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척척이다. 그런 남동생을 문가에 기대 사랑스럽게 보고 있던 누나는 제 파우치에서 작은 스크류 브러시를 꺼내 혁재를 침대에 앉히곤 혁재의 눈썹을 정갈하게 매만져 주었다.

 

 

 

 

나는 원래 성격이 못됐어, 혁재야. ”

 

아니야. 누나가 뭐가 못돼... ”

 

아냐. 난 애초에 오메가로 태어났고, 일찍 우성 오메가로 발현해서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걸 다 누리고 살았어. 사람들이 날 싫어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서, 난 내가 즐길 수 있는 걸 전부 즐겼어. 그리고 그걸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난 강했어, 혁재야. ”

 

“ ... ”

 

 

 

 

늘 당당하고 멋진 제 누나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 건 또 처음이었다. 혁재는 부드럽고 따뜻한 누나의 손길을 느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래서 난 네가 걱정이야. 그저 예쁘게 사랑만 받고 컸던 내 동생이 내가 겪었던 걸 겪는 게 무서워. 착한 내 새끼. 네가 감당할 수 있을까. ”

 

“ ... ”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관심에 중심에 서게 될 텐데, 네가 그걸 버겁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난 네가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혁재야. ”

 

누나. ”

 

 

 

 

누나의 애정 어린 걱정을 얌전히 듣고 있던 혁재가 이내 눈을 뜨고, 제 눈썹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누나의 가는 손목을 잡았다. 누나는 혁재가 눈을 감고 있던 그 짧은 새에 한쪽 눈에 떨어질랑 말랑 하는 눈물방울을 머금고 있었는데 그걸 보며 혁재는 픽 웃음이 터졌다. 우리 집안 울보 유전자 진짜 대단하다.

 

 

 

 

뭘 그렇게까지 걱정을 하고 그래. ”

 

십 몇 년을 베타로 살았는데, 갑자기 우성 오메가 발현을 한 내 새끼가 걱정이 되겠어, 안 되겠어. ”

 

누나. ”

 

“ .... ”

 

괜찮아. 나도 우리 엄마 아들이잖아. 누나 동생이고. ”

 

 

 

 

완벽한 우성 오메가가 될게, 모두가 좋아하는.

 

 

 

 

 

 

*

 

 

 

 

 

 

아빠가 너무 신난 것 같지? ”

 

“ ...., 엄마. ”

 

 

 

 

여태까지 그렇게나 많은 파티를 함께 다녔지만, 이렇게 파티장에 빨리 도착해 본 것은 또 처음이었다. 오죽 하면, 지금 파티장에 있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였달까. 어이가 없어서 웃던 혁재의 엄마와 누나가 혁재의 등을 떠밀었다. 아빠한테 가 봐, 우리 보석.

 

혁재가 곁에 오자 우리의 권위 있는 이 회장님께서는 금이야 옥이야, 혁재의 손을 꼬옥 잡곤 사람들 도착하기 전에 먹으라며 혁재의 접시에 음식을 덜어주었다. 이렇게 가족끼리 알콩달콩할 수 있는 시간도 잠시 뿐인 걸 아는 비서실장이 그런 두 부자를 쳐다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홀 안을 채웠다. 이번 파티를 주최한 측과는 별개로 초미의 관심사는 다름 아닌 혁재였고, 혁재는 어릴 적부터 알던 사람들에게, 마치 새로운 사람이라도 된 것 마냥 일일이 인사를 건네느라 바빴다.

 

시원이 아직 안 왔나? 분명 오늘 시원도 이 파티에 가족들과 함께 온다고 이야길 들었다. 시원이 오면 적당히 인사를 하다가 함께 배나 채울까 싶었는데, 어쩐지 오늘은 늦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계속 문 쪽만 힐끔거리는 혁재의 시야에 낯익은 모습이 비췄다.

 

 

 

 

.... 김희철. ”

 

 

 

 

그러고 보니, 희철이 우성알파라는 것은 그 역시 알아주는 집안의 자제일 거라는 이야기인데 왜 혁재는 진작 희철을 알지 못했을까. 이런 모임에서는 처음 보는 것 같은 희철의 등장에 놀란 건 혁재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모두가 희철을 힐끔거리며 저들끼리 무언가 말을 주고 받았다.

 

 

 

 

아는 사이니? ”

 

 

 

 

혁재의 눈빛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알아 챈 건지 혁재의 아빠가 희철을 한 번 힐끔 바라보고는 혁재에게 물었다. 혁재가 어.......... 하고 말을 더듬거리다가 이내 고갤 끄덕거린다. 학교 선배요.

 

희철 역시 혁재를 발견한 모양인지, 눈을 마주치더니 빙긋 웃고는 제 옆에 선 남자에게 무언가 귓속말을 했다. 그를 보더니 혁재의 아버지가 아는 척, 반가운 표정을 짓는 걸로 봐선 아무래도 저 사람이 희철의 아버지인 모양이었다. ... 김희철, 아버지 닮았구나.

 

 

 

 

안녕, 혁재야? ”

 

호칭이 담백하시네요, 오늘은. ”

 

부모님이 간섭하는 연애는 또 질색이라. ”

 

 

 

 

혁재와 희철이 아버지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나누시는 동안 혁재 역시 희철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희철이 하도 들이대는 게 이젠 좀 익숙해지기도 했고, 또 이렇게 낯선 곳에서 만나니 더 반가운 것 같기도 하고 해서 편하게 이야길 했더니, 희철이 또 능글맞게 수작을 걸어온다. 정말 이 형의 수작질은 내가 감당하긴 버겁다.

 

 

 

 

난 원래 이런 분위기 안 좋아해. ”

 

안 좋아하시는 게 많은가 봐요. ”

 

 

 

 

처음 만날 때도 단 걸 안 좋아한다고 했었고, 학교에서 언젠가 동해가 사다 놓은 딸기 우유를 마시고 있는데 제게 놀러와 목이 마르다고 칭얼거리길래 우유 하나를 건넸더니 자긴 우유를 못 먹는다며, 그것도 거절했었다. 근데 방금은 뭐? 부모님이 간섭하시는 연애도 질색하고, 이런 분위기도 안 좋아 한다고? 어째 부정적인 뉘앙스를 많이 담고 있는 사람인 것 같은데 신기하게 그게 또 그렇게 나빠 보이진 않는다. 얼굴 탓인가... 그래, 잘생긴 게 최고지.

 

 

 

 

그럼 뭘 좋아해요? ”

 

. ”

 

“ ..., 또 시작... ”

 

 

 

 

그 와중에 또 개수작을 걸어오는 희철 때문에 혁재가 어으, 하며 인상을 찌푸리고 뒤로 물러나니 마침 이야기를 마친 모양인지 혁재의 아버지가 혁재를 불러냈다.

 

 

 

 

지켜보고 있을 거야, 이혁재. ”

 

맘대로 하세여. ”

 

여기 나보다 섹시한 알파 없어. 그러니까 괜히 시간 낭비 하지 마. ”

 

“ ...... ”

 

 

 

 

미쳤다. 저 형은 진짜 미쳤어... 차라리 제 아버지와 인사를 하며 한 바퀴 더 도는 게 낫겠다 판단한 혁재가 몸서리를 치며 제 아버지와 함께 자리를 떴다. 그런 혁재의 뒷모습을 보며 희철은 프항항 신이 나게 웃었다.

 

 

 

 

“ ....희철아, 오늘 파티는 괜찮니? ”

 

괜찮은 것 같아요. 누가 있어서. ”

 

 

 

 

혁재의 아빠는 혁재를 데리고 계속 인사를 다니면서도, 수시로 혁재의 입에 간식거리들을 물려주었다. 달달한 간식거리들을 좋아하는 아들의 취향을 잘 알고 있는데다가, 좋아하는 음식은 정말 끝을 모르고 먹어대는 그 먹성은 벌써 십 년이 넘도록 겪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인사를 다니다 이번에 만난 것은 동해였다. 학교에서 만나기 전까지는 딱 한 번 만나 본 사이였는데, 학교에서 안면을 트고 나니 이렇게 또 바로 파티에서도 만나게 된다.

 

진짜 그 동안은 다들 날 모른 척 하고 살았나? 나름 이 집안에서 차별 대우 없이 사랑 받고 컸다고 생각했는데... 괜한 서러움에 킁, 마른 눈물을 훔친 혁재가 이번엔 동해의 앞에 섰다. 우리 아빠, 자리 선정 대박. 이 테이블엔 혁재가 좋아하는 초콜렛들이 가득했다.

 

뭐 먹을까? 혁재의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저거 먹어, 저거. ”

 

저거? 저거 무슨 맛인데? ”

 

위스키. 몰래 먹어야 돼. ”

 

 

 

 

뭐 그렇게 큰 이야기라도 제게 소곤소곤 말을 걸어오는 동해가 귀여워 혁재는 동해의 팔을 팔꿈치로 툭 치며 웃었다. 동해가 아야, 하고 아픈 척을 하며 주위를 살피다 위스키 초콜렛 하나를 입에 쏙 넣었다. 대놓고 먹어도 사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텐데, 아무래도 동해는 장난이 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런 장난에 응해주고자 혁재도 남들의 눈치를 보며 초콜렛을 하나 입 안에 쏙 집어넣었다. 위스키 초콜렛이라더니 정말 그런지, 씁쓸함과 단맛이 혁재이 입 안에서 뒤엉켰다. ,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데? 혁재는 동해와 마주 보고 서서 이야기하며 초콜렛을 몇 개 더 먹었다.

 

 

 

 

이거 걸리면 완전 네 탓이야. ”

 

걱정 마. 책임질게! ”

 

당연하지. 책임져야지. ”

 

평생! 너의 평생을 책임질게! ”

 

“ ...여기서 제발 그런 소리 좀 하지 마. ”

 

 

 

 

남부끄럽단 말이야! 희철이 진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수작을 부린다면 동해는 장난을 치는 것처럼 은근슬쩍 밀고 들어오는 편이었다. 거기에 같은 반 친구라는 전제를 깔고 있었기에 사실 혁재는 동해의 수작은 장난으로 받아 주곤 했다. 동해는 그게 좀 불만인 듯 싶긴 했지만, 그래도 희철보다 저를 더 편해하는 건 맞는 것 같아서 어느 정도 접고 들어가기로 한 부분도 있었다.

 

그렇게 동해와는 조금 더 긴 시간을 웃으며 이야길 나눴고, 혁재와 동해는 곧 각자의 아버지에게 이끌려 안녕을 고했다.

 

그렇게 몇 바퀴를 더 돌았는지 모른다. 점점 사람이 많아짐에 따라 일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자 혁재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가 있으라며 혁재를 보냈다. 그래서 엄마에게 가려던 혁재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모여서서 우아하게 대활 나누는 여성분들을 보며 아, 저긴 내가 낄 자리가 아니다, 라고 판단했고 2안으로 누나에게 가야겠다던 결정은 학창시절 별명이 여왕님이었다는 누나답게, 자신의 남편을 대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나이대의 우성알파들에게 둘러 싸여 있는 모습을 보곤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

 

결국 혁재는 막 파티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시원을 발견하고 나서야 걸음을 옮겼다.

 

 

 

 

시원아! ”

 

 

 

 

소리 높여 시원의 이름을 부르자 시원과 함께 들어오던 시원의 가족들이 더 반갑게 혁재를 향해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어유, 우리 혁재 몸은 좀 괜찮니... 하고 걱정스런 얼굴로 물어 보시는데, 그런 가족들을 보는 시원은 제가 더 겁이 났다. 엄마, 아빠... 티내시면 안돼요.. 이혁재 아직 아무것도 몰라요.... 혁재를 이미 미래의 며느리 보듯 하는 저 말투를 보며 괜히 혼자 불안에 떨던 시원은 결국 혁재와 잠시 이야기하고 가겠다며 제 가족들을 먼저 들여 보냈다.

 

 

 

 

늦었네? ”

 

. 아버지 회사에 일이 있으셔서. ”

 

저녁도 안 먹었겠네. 오늘 디저트 굿굿. ”

 

넌 좀 먹었어? ”

 

. 아빠가 챙겨주셔서 먹고... 동해랑도 먹.. ”

 

이동해? ”

 

 

 

 

시원의 눈썹이 또 삐쭉 올라갔다. 아이, 애도 아니고 또 그런다. 혁재가 손을 들어 시원의 눈썹 부근을 꾹꾹 눌렀다. 동해 이야기만 나오면 왜 그래, 대체. 저를 향한 시원의 마음이 어떤지 알 리 없는 혁재가 시원을 어린아이 꾸짖듯 쓰읍, 하고 입술을 앙 다물며 말했다.

 

 

 

 

에효... 이혁재 진짜. 우리 혁재 언제 다 크냐. ”

 

뭐래. 동갑이. ”

 

있다. 그런 게... 넌 모르는 그런 게 있어... ”

 

대체 뭐라는... ”

 

혁재형! ”

 

 

 

 

, 또 쟤야. . 언제 온 건지 혀엉, 하며 혁재의 팔을 잡아 오는 규현을 보며 시원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내 혁재는 진짜 인기가 많아도 너무 많다. 근데 그건 알아줘야 해. 혁재야. 난 네가 베타일 때부터 널 좋아했고, 쟤넨 네 향기에 홀린 거야. 진짜... 시원이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관자놀이를 손가락 두 개로 꾹꾹 눌렀다.

 

그런 시원을 가만히 보던 혁재가 잠깐 인상을 찌푸렸다. 뭐지, 단 걸 너무 많이 먹었나.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오늘 여기 오면 혁재형 있을 줄 알았어요. ”

 

난 네가 없길 바랬는데. ”

 

아이, 시원이형 왜 그래요. 제 롤모델. ”

 

 

 

 

, . 저 롤모델 진짜. 언제부턴가 자꾸 규현이 자길 보고 롤모델이라는 이야기를 하길래, 나중에 슬쩍 물어 본 적이 있었다. 내가 대체 왜 네 롤모델이야? 그 질문에 규현은 그렇게 대답했더랬다. 혁재형을 어릴 때부터 알아봤잖아요. 최소 이 시대의 안목 왕.

 

 

 

 

날 롤모델로 삼으려거든 페로몬 제어하는 법부터 배워, 규현아. ”

 

... 제가 발현한 지 얼마 안 돼서. 그건 열심히 노력해 보도록 할게요, . ”

 

“ ...최고다, 진짜. ”

 

 

 

 

시원의 그 말에 규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분명 규현은 혁재에게 접근하기 위해 연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완벽했던지 지금 이 상황이 혁재의 눈엔 꼭 시원을 존경하고 잘 따르는 규현을 맘에 들어 하지 않는 시원같아 보였다. 물론 제 친구인 시원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알고 있기에 혁재는 나중에 혹시 두 사람이 서로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면 잘 풀어줘야겠다고 결심했더랬다.

 

시원도, 규현도 모두 혁재의 곁에 있고 싶었지만 이 곳은 오로지 혁재의 곁에만 붙어 있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특히나, 이들 모두가 아직 부모님의 관리 하에 있는 10대 청소년들이었기에 더했다. 결국 시원과 규현 역시 부모님에게 불려가고, 혁재는 다시 혼자 남았다.

 

혼자 남고 나니 또 다시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이번엔 삐죽 식은땀까지 흘렀다. 설마 아까 먹은 초콜렛이, 그래도 지도 위스키라며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 불쾌한 감각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몸의 아픈 곳이 늘어나는 것만 같아 혁재는 잠시 제 땀을 식힐 겸 테라스로 나갔다.

 

이제 5월이 시작되었고, 초여름이 되었지만 밤은 그래도 추운 편이다. 그래서인지 테라스로 나가자마자 혁재를 휘감아 오는 싸늘한 기운에 혁재는 기분이 좋아져 얼굴 표정을 풀었다.

 

저어기 테라스 아래로 아직 남아 있는 봄꽃들이 보였다. 가로등의 빛에 제 아름다움을 뽐내며 예쁘게 하느작거리고 있는 게 어쩐지 꽤 마음에 드는 풍경이었다. 더 자세히 보고 싶어. 난간 쪽으로 몸을 더 내밀던 혁재는 갑자기 몰려오는 깨질 듯한 두통에 그만 바닥에 주저 앉고 말았다. , 엄마... 아빠... 본능적으로 부모님을 떠올리며 제 주머니 속 휴대폰을 찾던 혁재가 이내 몸 속 깊은 곳부터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열기에, 겨우 닿은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손을 덜덜 떨었다.

 

 

 

 

“ ...이런 곳에서 좋은 냄새가 나네? ”

 

 

 

 

그리고 대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처음 보는 낯선 사내가 시뻘겋게 눈을 물들인 채 테라스로 나와 혁재를 보더니 거무죽죽한 입술을 침으로 적셨다.

 

.... 그제야 알았다. 혁재는 지금 히트 싸이클을 겪고 있는 것이었다. 기질 안정화 기간 동안은 히트 싸이클 기간이 제 멋대로 일 것이라는 걸 혁재를 비롯한 가족들이 모두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던 결과였다. 혁재는 이 일이 처음이라 몰랐고, 가족들은 겪은 지가 오래 되어 잊고 있었다.

 

아마 저 열성 알파는 이 주변을 맴돌고 있었던 모양이다. 우성 알파들이 가득한 이 곳에서 주인공이 될 수 없었기에 아마 더 가장자리를 진득하게 훑고 있었겠지. 그랬으니, 혁재를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혁재에 대해 알고 있는 알파였다면, 혁재가 가지고 있는 그 배경이 두려워 고작 이 정도 향에 굴복해 혁재를 범하고 싶어 하진 않았을 것이다.

 

혁재의 안정화가 끝나, 차라리 우성오메가 특유의 강한 향이 퍼진다면 이 일이 쉽게 해결될 수도 있었겠지만 혁재는 아직 향이 약한 아기 우성 오메가였다. 그 말은 즉, 혁재가 이 상황에서 무사히 구해질 확률이 굉장히 적은 편이라는 이야기다.

 

 

 

 

... 살려주세요. ..와주세요... ”

 

. 살려줄게. 도와줄게. 히트 싸이클이 온 오메가를 도와주는 법을 잘 알고 있어. ”

 

 

 

 

남자는 제 목을 꼭 죄고 있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 헤쳤다. 딱 죽기 직전의 고통을 겪고 있던 혁재는 다가오는 그 남자를 보며 쉰 목소리로 애써 소리를 짜내다 눈을 감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이 망할 본능이 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 쯤 하지. ”

 

여기! 이 쪽이에요! ”

 

감히 누굴 건드려? 상대가 누군 줄 알고. ”

 

 

 

 

눈을 감으며 혁재는 저를 졸졸 따라 다니던 몇몇을 본 것도 같았다.

 

 

 

 

 

 

*

 

 

 

 

 

 

알파와 오메가의 각인을 금하는 기질 안정화 기간은 1년이다. 그리고, 오메가의 히트 싸이클은 한 달을 주기로 지속되었다. 그러니까 이제 고작 두 번의 히트 싸이클을 겪은 혁재에게는 기질 안정화가 끝나기까지 열 번의 히트 싸이클이 더 남은 것이었고, 그 말은 혁재가 앞으로 열 번의 변화를 더 거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시원이 혁재의 첫 변화를 알아챘던 것처럼, 그렇게 눈에 띄게 혁재는 변할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하며 자식 사랑이 굉장히 지극했던 혁재의 아빠는 또 우셨다. 저 늑대 자식들이 벌써부터 이 난리인데, 1년 뒤엔 얼마나 더 심할 거야 하면서. 그런 아빠의 등을 토닥거리며 엄마는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도 그 늑대였대도 그러네...

 

 

다행히도, 그 날의 사건은 그 씹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열성 알파가 혁재에게 손도 대기 전에 동해가 먼저 혁재를 발견하는 것으로 사건이 종결되었다. 그 날의 그 열성 알파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아마 앞으로도 쭉 그 사람의 소식을 듣지 못할 거란 건 분명했다.

 

 

 

 

괜찮대도. ”

 

더 누워 있어, 혁재야. ”

 

에이. 진짜 다 끝났어. 쉴 필요 없어요, 아빠. ”

 

 

 

 

지난 번 우는 누나를 달래며 자신도 이 집안의 우성오메가라는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는지, 혁재는 그 날의 일에 큰 충격을 받지는 않은 것 같았다. 다만, 그런 새끼는 내가 XX를 터트렸어야 해, 하며 이 집안 특유의 존나쎄 우성오메가 기질이 좀 더 각성됐달까.

 

회사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가 봐야 하는 아빠에게 안녕, 손을 흔들어 보내고는 혁재도 얼마 되지 않아 1층으로 내려왔다. 히트사이클을 또 한 번 겪어서 그런가? 어쩐지 평소보다 몸이 좀 가벼운 느낌이다. 그렇게 팔랑거리며 1층으로 내려 온 혁재의 눈엔 산같이 쌓여 있는 각종 재질로 포장 된 박스들이 보였다.

 

 

 

 

“ ...아주머니, 저게 다 뭐에요? ”

 

아이고, 이제야 보셨어요? 도련님 그 날 그렇게 실려 오시고 나서 저 선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배달됐어요. 네임 택도 다 붙어 있으니까 직접 한 번 보세요, 도련님. ”

 

 

 

 

뭔가 확인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느낌에 혁재는 멈칫거리며 박스들이 쌓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이것 봐, 이럴 줄 알았어.

 

이동해, 최시원, 이동해, 조규현, 김희철, 김희철, 이동해, 조규현, 최시원, 최시원...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듯 혁재에게 선물을 보내 온 네 사람의 이름을 보며 혁재가 어이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선물에 달린 네임택들만 하나, 하나 고이 떼어내 손에 쥐었다.

 

우리 우성 알파님들, 다음부턴 좀 더 우성 오메가답게 받아줘 보기로 할까. 혁재의 입가에 섹시한 웃음이 걸렸다.

 

 

 

 

 

 

[Fin.]







슈퍼주니어 트랙합작 17. Simply beautiful 에 참여했던 글입니다!

오메가버스의 매력은 역시 모두가 다 이 우성오메가만 조아해...인 것 가타여>< 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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