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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 31. 22:19 - 가루비0404

[은혁/동해] 여름날의 선망




여름날의 선망

W. 가루비









거울 속의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그 느낌이 어찌나 생경하고, 오묘했던지 나는 너와 말을 한 번 제대로 나눠보지 않은 사이라는 것도 잊고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 거울 속에 네 웃음이 비쳤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 그 때가 이 마음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

 

 

 

 

아마도 이혁재는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었던 것 같다. 한 번도 물어 본 적은 없었지만, 늘 점심시간마다 반 아이들과 축구를 하고 들어 온 뒤 혼자서 오랫동안 빨개져 있는 두 볼을 보면 그랬다. 아마 땀도 많이 흘리는 편이었던 모양인지, 점심시간이면 머리를 포함한 상체를 깨끗하게 씻은 후 체육복 상의나 개인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 새 빨아서 창가에 널어 둔 이혁재의 교복 상의 때문에 점심시간이 지나 4교시가 시작하는 교실에서는 늘 이혁재를 닮은 비누 냄새가 났다. 성격도 서글서글하니 좋아서는 반 아이들 대부분과 친하게 지냈고, 다른 반에도 친구가 많아 보였다. 그래서인지 다들 교실 창가에 걸려 바람에 나부끼는 이혁재의 교복 상의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고, 이혁재는 우리 반의 마스코트 쯤 되는 것 같았다.

 

나는 4월이 시작되던 날, 이 반에 전학 왔다. 서로 이미 다들 친해진 상태이고, 또 그 중 더 친한 사람들끼리는 붙어 다니기 시작하던 4월이었다. 그다지 붙임성이 있는 편은 아니었던 난 자연스레 혼자가 되었는데 그래서인지 반 아이들을 꼼꼼하게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알았다. 이혁재가가 원래는 머리칼이 흑갈색이었지만, 지금은 검은색으로 염색을 했다는 것도, 반짝반짝 빛나는 입술의 비법이 두꺼운 흰색 케이스에 든 어느 립밤 때문이라는 것도. 사소한 것 하나, 하나를 알아 갈수록 그 애가 더 궁금해졌다.

 

 

 

 

? 동해! ”

 

“ ...이혁재? ”

 

맞지, ! 우리 반 전학생! , 내 이름 안다. 안다. ”

 

 

 

 

친구는 없었지만 새로운 취미에 눈을 떠 학교생활이 그리 심심하지만은 않았던 어느 날이었다. 모의고사를 봐 보충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 없이 학교가 일찍 끝났던 날. - 물론 나는 집이 가깝지는 않은 편이라 일찍 끊기는 버스 때문에 야자를 하는 편은 아니었다. - 그래도 학교 자체가 합법적으로 일찍 끝나는 날이라 기분이 또 달랐던 그 날, 집에 가는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내 이름을 부르는, 낯익지만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내 이름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오히려 이혁재가 내가 할 소릴 한다.

 

 

 

 

너 어디 가? ”

 

 

 

 

여기서 버스 타는 애들이 많지 않은데... 전학 온 후 매일, 여기서 버스를 타고 등하교했지만 난 나와 같은 버스를 타는 우리 학교 학생을 몇 번밖에 보지 못했다.

 

 

 

 

. ”

 

? ”

 

 

 

 

그리고 그 중에 이혁재는 없었다. 분명히. 시간이 엇갈렸다거나 이런 게 아니라, 정말 이혁재가 이 곳에서 이 버스를 타는 것을 나는 정말 본 적이 없었다.

 

 

 

 

 

너 어디 사는데? ”

 

성지동. ”

 

 

 

 

.....?..우리 동네?

 

 

 

 

원래? ”

 

. 나 태어날 때부터 성지동 살았는데. ”

 

“ ... ”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그 동네에 살았다는 애에게 뭐라 할 말은 없어 그냥 눈만 크게 뜬 채로 입을 닫았다. 그러다 응? 하며 내 표정을 헤아리던 이혁재는 또 배시시 웃으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난 맨날 부모님 차 타고 다녔거든. 그래서 네가 몰랐나보다. 자식, 그래도 내가 너보다 성지동 토박이야. ”

 

아아.... . ”

 

 

 

 

어색하게 대화가 끊겼다. 학교에선 단 한 번도 이혁재와 이야길 나눠 본 적이 없어, 나는 이혁재와의 사이에 흐르는 침묵을 깰 방법을 몰랐다. 나는 괜히 큼큼, 헛기침을 하기도 했고 발로 바닥을 툭툭 차며 땅을 바라보기도 했고, 메시지라도 온 척 휴대폰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옆을 보았는데, 이혁재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더라. 너랑 나랑 다른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나만 이렇게 조급하고 초조하지. 괜히 내 자신이 답답하고 한심스러워 나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며 고갤 떨어트렸다.

 

 

 

 

전 정류장이래. ”

 

 

 

 

그러다 들려 온 이혁재의 목소리에 반짝 정신이 들었다. 뭐가 어쨌건, 누가 어쨌건 간에 일단 버스는 타고 가야지. 30분에 한 대씩, 그것도 불규칙하게 오는 터라 이번 버스를 놓치면 또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텀이 길다보니 버스엔 늘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데, 지금 이 정류장에서도 기다리는 사람이 꽤 있는 편인지라 미리 줄을 서지 않으면 집에 가는 시간 내내 서 있어야 했다. 이혁재는 그걸 모르는 모양인지 정류장 앞쪽으로 걸어가는 날 빤히 바라보기만 한다.

 

 

 

 

“ ...빨리 와. ”

 

 

 

 

용기 내 한 마디를 건넸다. 그랬더니 이혁재는 의아한 표정을 했다.

 

 

 

 

버스 오면 슬슬 타도 괜찮지 않아? ”

 

그럼 못 앉을 걸. ”

 

 

 

 

태어날 때부터 그 동네에 살았다고는 하는데, 아무래도 버스는 많이 안 타 본 모양이다. 그렇다고 아는 애를 그냥 둘 순 없고, 저 멀리 파란 버스는 보이고, 사람들은 슬슬 줄을 서려고 하고...

 

결국 난 성큼성큼 이혁재에게 걸어 가 이혁재의 팔을 붙들었다. 그리곤 난 서서 가는 거 싫어, 하면서 이혁재를 잡아끄니 이혁재는 생각보다 쉽게 끌려 와 주었다.

 

버스가 도착하고 제일 먼저 버스에 올라 카드를 찍은 후 두리번거리니 둘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자리는 하나도 없었다. 이거 봐. 자리 없을 줄 알았어. 이혁재랑 뒤에 서 있다간 아예 앉을 자리도 없을 뻔 했다. 어디 앉을까 고민하다 그나마 맨 뒤에서 두 번째 줄이 양 쪽 다 끝자리가 하나씩 비어 있기에 내 뒤를 이어 탄 이혁재를 슬쩍 돌아보곤 저 쪽으로 가자, 앞장섰다.

 

 

 

 

... ”

 

 

 

 

뒷문이 있는 곳 즈음까지 걸어갔는데 맨 뒷줄 중간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일어나더니 내가 봐둔 자리로 내려와 앉았다. 갑자기 목적을 잃어 어버버, 하고 있으려니 이혁재가 내 가방을 끌어당기더니 빈 좌석에 날 밀어 넣었다.

 

 

 

 

... , 고마워. ”

 

 

 

 

일단 난 앉았으니 됐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내 앞앞자리가 비어 있는 게 보였다. 난 이혁재를 올려다보며 손짓했다. 저기로 가, 저기 가서 앉아. 허나 내 손짓이 무색하게 이혁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 앉을 거야? ”

 

. 안 앉아도 돼. ”

 

그럼 가방이라도 줘. 내가 가방 들어줄게. ”

 

그럴래? 고마워! ”

 

 

 

 

재차 이어지는 내 말에 날 잠시 내려다보던 이혁재는 매고 있던 가방을 주섬주섬 벗어 내 무릎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우리 반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내가 모르는 표정을 할 때마다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게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30분을 난 눈만 깜빡거리며 이혁재의 이야길 들었다.

 

 

 

 

*

 

 

 

 

집이 근처란 걸 알게 된 이혁재는 내게 함께 등하교를 하자 제안했다. 처음엔 그냥 그래, 했는데 그게 자기네 부모님 차를 같이 타고 다니자는 말인 걸 깨닫고는 괜찮다고 몇 번이고 거절을 했으나 너 한 명 더 탄다고 기름값 더 드는 거 아니라며 자리에서 제 부모님이랑 통화까지 마치곤 내게 통보했다. 내일 715분까지 집 앞으로 나와, 하고.

 

그래서 난 지금 이혁재와 나란히 교실로 향하는 중이었다. 아무도 이혁재와 날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지만 난 괜히 주변 시선이 거슬렸다. 꼭 아이들의 눈이 내게 너 이혁재랑 친해?’하고 묻고 있는 것 같았다.

 

 

 

 

혁재야, 안녕. ”

 

, 안녀엉. ”

 

 

 

 

교실 앞문이 열리고 내가 먼저 들어갈 땐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내 뒤를 따라 이혁재가 들어가자 교탁 앞에 모여 서서 이야기를 나누던 여자애들 무리부터 시작해서, 저어기 창가 쪽에 모여 앉아 비속어를 섞어 떠들던 남자애들 무리까지 모두가 이혁재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혁재는 익숙한 듯 손을 한 번 휘이 흔들어 주었고, 그 애들 중 몇몇이 이혁재에게 다가서며 저들끼리만 아는 이야기를 건넸다. 그리고는 이내 이혁재를 중심으로 해서 뒷문으로 쏙 빠져 나갔는데, 그걸 보며 난 역시 우리 반의 중심, 이라며 속으로 널 칭찬했다.

 

 

 

 

, 이동해! ”

 

? ”

 

너 뭐 먹을래? 매점! ”

 

 

 

 

아까 이혁재와 함께 나갔던 아이 중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와 날 향해 외쳤다. 뭐지? 갑자기 매점은 왜? 쟤가 왜 나한테 저런 걸 묻지?

 

궁금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반에 남은 아이들 몇몇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야기해 보는 것 자체가 아예 처음인 나와 그 앨 번갈아 바라보았다.

 

 

 

 

... 너도 아침 안 먹었다고 이혁재가 물어보라던데? ”

 

 

 

 

그제야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았다. 안녕하세요, 하고 이혁재네 차에 올랐을 때 이런 저런 인사를 건네 오시던 이혁재네 어머니께서는 그래, 동해 너는 밥 먹었니?’ 하며 내게 물으셨었다. 그 질문에 내가 뭐라고 대답했더라... , 그래. 아니요. 원래 아침 잘 안 먹어요. 하고 대답했었지. 이혁재는 그 대답을 기억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 나 우유. ”

 

 

 

 

1교시가 시작하기 전, 매점에서 돌아 온 이혁재는 내게 바나나 우유 하나와 단팥크림빵 하나를 건넸다. 그리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유 먹고 키 많이 커야 해 우리 동해했다. 참 신기하게도 이혁재의 그런 장난은 전혀 기분이 나쁘지가 않더라. 나는 웃었고, 너도 따라 웃었다. 나는 그 날, 이 학교에 전학 온 후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

 

 

 

 

너 그 때, 나한테 키 크라고 했었어. 자기도 큰 편은 아니었으면서! ”

 

우리 동해보다만 크면 되는 거 아니야? ”

 

 

 

 

서로 몇 달 차이로 전역을 하고, 나보다 한 학기 늦게 복학하는 넌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머리를 감고, 거울을 봤다가, 내 서랍을 뒤져 뭔가를 찾아 얼굴에 찍어 바르기를 반복하며 정신이 없었다. 그에 반해, 하필 짜 놓은 시간표가 오늘이 공강이라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나는 괜히 일찍 일어나 바쁜 네게 심술을 부리는 중이었다.

 

 

 

 

대체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이래? ”

 

교수님. 동해야, 교수님. ”

 

거짓말! ”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났던 그 때처럼, 대학교에 진학해서도 여전히 그 때만큼이나 인기가 많은 이혁재를 아는 난 한껏 멋을 내는 저 모습이 못마땅했다. 아무거나 걸쳐도 맵시가 나는 애가 저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이유가 뭐야! 사실 원래 이혁재가 저런단 걸 알면서도 나는 괜히 입술이 불퉁 나왔다. 고등학교 땐 같은 반, 아니, 같은 학교이기라도 했지, 지금은 학교까지 달라서 나는 네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모른다.

 

이혁재는 그런 내 맘을 아예 모르는 건 아닌지, 그 바쁜 와중에도 내 투덜거림에 모두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덜 서운해 할 걸 잘 아는 터였다.

 

 

 

 

오늘 학교 갔다 와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동해. ”

 

오늘? ”

 

. 우리 둘이 나 복학 기념 개강 파티. ”

 

“ ...못 할걸? ”

 

 

 

 

갓 복학한, 그것도 이혁재같이 인기 스타인 애를 먼저 복학했던 동기들, 그리고 안면이 있는 선후배들이 가만 둘 리가 없다. 지난 내 복학 때를 떠올려 봐도 그것은 너무나 지당한 사실이었다. 대체 그 틈을 어떻게 빠져 나올 건데. 넌 그거 못해, 이혁재.

 

괜히 또 서운함이 차올라서 입을 삐죽거렸다. 그랬더니, 이혁재가 준비를 하다 말고 날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손에 헤어제품을 잔뜩 묻힌 채로 내게 다가와 동해, 한다. 나는 지는 척, 평소처럼 고갤 들고 이혁재를 향해 입술을 내밀었다. 그러자 이혁재가 픽, 웃으며 내 입술에 쪽 제 입술을 꾹 찍었다.

 

 

 

 

할 수 있어. 전부 다 내일로 미룰게. ”

 

... ”

 

알잖아. 나한텐 네가 제일 중요해. ”

 

 

 

 

나는 평범했다. 말수도 적고, 숫기도 없었다.

이혁재는 특별했다. 모두에게 친절했고, 모두가 그 앨 좋아했다.

 

그리고 이젠, 이혁재에게 내가 특별했다. 평범한 내가 네 곁에서 빛이 났다.

나는 너를 선망했고, 너는 나를 사랑했다.






[Fin]



- 슈퍼주니어 팬아트 & 팬픽 사이트 LUA(http://lua051106.ivyro.net/)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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